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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회도 살인사건 ㅣ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계회도의 의미]
조선시대의 계회도란 무엇인가? 계회도란 ‘문인들의 계회 광경을 그린 기록화’이다.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된 계회를 기념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작되는 그림이다. 계회도를 그리는 화가는 계회에 참석한 인물들에게 각자 나누어주기 위해 여러 장의 계회도를 그렸으며, 계회에 참여한 이들은 나이순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진수의 아버지 조만규는 자신의 재능을 양반이 아닌 일반 평민들을 위해 베풀었다. 그들이 모임을 추억할 수 있도록 푼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일을 한 것이다. 여기서 떠오른 것이 바로 ‘사진’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계회도는 사진의 역할을 수행했다.
얼마 전, 카메라를 구입했다. 살면서 그렇게 큰돈을 들여 갖고 싶은 물건이 있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카메라에는 꽤 욕심이 났다. 꼬박 2년을 고민하고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구입한 일은 사진에 대한 나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지난 순간을 간직해주는 사진이 소중했다. 그래서 추억 더 선명히 남겨주는데 도움이 되는 카메라가 탐났다. 진수의 아버지이자 환쟁이 조만규는 자신이 그린 계회도에 꼭 ‘억(憶)’자를 새겼다. 지금의 카메라의 역할을 화가가, 사진의 역할을 그림이 했던 것이다. 그것은 추억한다는 뜻의 글자이자 조만규의 그림에만 있는 상징(또는 직인)이다. 후에 진수가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진정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때 자신의 그림에 ‘억(憶)’자를 쓰게 된다.
예전에 책에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조만규에게 그림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수단이 아닌, 순수한 예술 그 자체의 의미였다. 처음 인간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와 가장 근접한 가치로 그림을 그렸다. 조만규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소중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본질적인 이유로 그림을 그리는 삶을 추구했다. 비록 처음에는 아들조차 그 뜻을 외면했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나는 그림이 가지는 예술적 순수함이 부와 명예를 뛰어넘어 얼마나 고귀한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수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도구로 사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결말이었다면 예술이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가 인간의 욕망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저자가 추구했던 것 중에 예술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승리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