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십죽재전보 ㅣ 클래식그림씨리즈 4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 그림씨 / 2018년 8월
평점 :
서양화에 대한 책은 많이 읽어왔지만 동양화에 대한 책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서양화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다가 아마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책 대부분이 동양 미술보다는 서양 미술에 대한 책이라는 것도 이러한 접근성에 한몫하리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미술 수업에서도 동양화보다는 서양화에 훨씬 큰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호기심과 기대로 펼쳐본 [십죽재전보]를 다 읽을 때 쯤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가까이 있는 것에 관심을 멀리해왔을까. 동양 미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을 다 읽고서 녹색창에 검색해보았으나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건 설명하면서 왜 대단한지, 어떤 포인트를 보면서 즐겨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나마 있는 설명 또한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말은 아니여서 안타까웠다.
[십죽재전보]는 명나라 말의 문인 호정언이 편찬했으며, 쉽게 설명하자면 '시화'를 모아 묶어놓은 일종의 시집 같은 것이다. 다만 글보다는 그림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글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하여 그림에 더욱 집중하도록 돕는다. 책의 초반에 '시전지'가 시작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작은 책갈피 등에 글과 그림을 그려 꽂아두던 '시전지'가 발전하여 [십죽재전보]와 같은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크게 특별한 것을 담는게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을 표현한다. [십죽재전보]는 한작품, 한작품을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동양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은 소장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책이 누드제본으로 되어있어 페이지마다 180도로 쫙쫙 펴지는 것이 좋았다. 누드제본을 처음 접했는데 그림을 감상하며 읽기에 적합한 제본 방식이라 감탄했다. 그리고 그림책인만큼 종이 자체의 재질이 우수하다. 덕분에 공화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 또한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공화기법이란 문양을 새긴 목판에 아무런 색을 칠하지 않고 마렌(바렌)으로 문질러 종이에 요철처럼 돋움 문양이 새겨지도록 하는 수법이다. 선과 색이 아닌 요철로 표현되기 때문에 일반 종이로는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즉, [십죽재전보]를 단순히 책으로 펴낸 것이 아니라 책 자체가 작품을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