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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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한껏 조용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대학 신입생 다바타 가에데. 하지만 우연히 강의실 옆자리에 앉은 4차원 여학생 아키요시에게 점점 휘말려들면서 거창하게도 세계 평화를 위해 지금 당장 모든 무기를 내려놓자는 동아리 '모아이'를 결성하게 된다.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단둘만의 비밀결사 모아이는 소소한 활동을 펼치는데......

3년 뒤, 어느덧 모아이는 취업용 인맥 쌓기 동아리로 변질되고 말았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아키요시는 이미 이 세계에 없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졸업 전에 모아이를 무너뜨려야 한다.

이상을 되찾아올 것이다, 아키요시를 위해.

도서뒷면 줄거리 발췌




누구나 자신을 이상을 동경하며, 쫒아가고 결국 좌절한다.

세간에선 이른바 '이상론' 이라는 일컬어지는 이것은 이를 테면 '이 세상에 폭력이 없으면 좋겠어!'와 같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추상적인 이상을 말한다. 하지만 대게 그런 류의 이상론이 그렇듯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현 가능성이라곤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정한 나이가 차면 그런 이상론 따위 '히어로가 없는 이상 있을 수 없어!' 라며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등을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이상론을 대학생이나 되어서도 떠벌리는 바보가 있다면 어떨까? 3교시 일반 교양과목, '평화구축론'에서 본작의 히로인 격인 아키요시는 앞서 말했던 '이 세상에 폭력이 없으면 좋겠어!'처럼 자신만의 바보 같은 이상론으로 강의실을 한 바탕 웃음바다로 만들며 이 소설이 전개된다.

여기서 잠깐, 주인공인 다바타와 더불어 아키요시의 성격을 짧게 소개하자면 먼저 주인공인 다바타는 '섣불리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를 인생 테마로 삼은 평범한 대학생으로, 그의 인생 테마에서도 엿볼 수 있듯 타인의 접촉을 무척 꺼려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아키요시, 그녀는 앞선 해프닝으로도 알 수 있듯 자신의 이상론을 한껏 펼치며 추구하려는 쾌활한 성격을 가진 여대생이다.

이렇게 설명해놓으니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듯 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아키요시는 다바타에게 눈길이 간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곧잘 다바타에게 다가가 그 때마다 자신의 이상론을 늘어놓았다. 그 횟수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두 사람은 관계는 점점 발전해나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바타는 아키요시의 그 순수함이 지닌 이상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키요시는 이른바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든다.' 라는 신념을 가진 동아리, 일명 '모아이'를 세운다. 하지만 부원은 아직 아키요시 그녀 한 명 뿐이었고, 달랑 그녀 혼자 부원으로 있는 '모아이'가 동아리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아키요시는 모아이에 다바타를 끌어들인다. 처음엔 모아이 활동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다바타였지만 어느 샌가 그는 모아이에 빠지게 되고, 신규 부원도 차츰 늘어갔다.

...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모아이는 부원이 두 명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규모로 커져있었다. 햇병아리였던 다바타도 어느새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흐른 시간만큼이나 모아이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오갔다.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든다.'였던 모아이의 신념은 빈껍데기에 불구한 캐치 프라이드로 전락했고, 일종의 자기계발을 목표로 한 동아리 활동도 언제부턴가 더 수월한 취업을 위한 하나의 사교모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게, 세상 많은 것들이 그래왔듯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외부에 노출된 이상은 말이다. 하물며 자연의 섭리가 이런데 인간의 무리라고 다를 수 있을까.

인간은 경험으로 자신을 확립해가고, 자신을 확립해감으로써 비로서 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는 수시로 변화한다.

그것은 모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부원이 늘고, 활동량이 증가하고... 현실의 기로에 가로막혀 이상을 쫒던 아키요시가 없어짐에 따라, 순수한 이상을 쫒을 수 없게 된 것에 따라 우선 순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현실을 봐.'같은 한마디처럼 잔혹한 말은 어디에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다바타도 변질된 모아이를 경멸한 만큼이나 내심 마음 한구석에선 모아이의 변질을 이해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막상 다바타 자신도 이상을 버리고 거짓과 과장이 점철된 자기소개서로 면접에 붙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키요시가 처음부터 추구했던 이상 같은 건 실현 불가능하다고. 그녀가 처음 모아이를 설립 했을 때의 이상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없다고. 그렇게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미숙함은 그것을 받아들이길 완고히 거부했다. 탓에 응어리진 그 부정은 "지금의 모아이를 부숴버리자."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어버렸고 그 결과 다바타는 친구 도스케와 함께 '모아이 무너뜨리기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사실 다바타는 '모아이 무너트리기 계획'을 한편으로 원래의 모아이를, 모아이 속 자신이 있을 수 있었던 곳을, 순수하게 이상론을 떠들어대던 아키요시의 찬란함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이 어땠던지 결국 모아이는 변질되어버렸다.

원래 인간이란 그렇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게 되면 나중에 그것이 자신의 기대를 져버렸을때 좋아했던 만큼의 실망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분노를 느껴버린다. 일찍이 다바타는 '자신이 자신으로써 있을 수 있던 공간'이었던 모아이에 큰 애정을 느끼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아이는 이상을 쫒을 수 없는 곳으로 바뀌어버린다. 이윽고 다바타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모아이를 향한 혐오와 분노였다.

그렇기에 다바타가 모아이에서 느낀 분노를 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시종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독서에 임했다. 하지만 이해하며 읽었다는 것과 공감하며 읽었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첫 장에서 마지막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정돈되지 않은 감정이 먼저 앞서가는 다바타를 보며 나는 그가 어째서 이렇게 까지 되어버린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선 전혀 공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바타가 하는 행동이 찌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는 다바타를 통해 그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갓 입학한 풋내기 대학생이었던 다바타가 변질된 모아이를 받아들이고 비로소 '어리고 아리고 여린 마음'을 탈피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대학이란 본래 갓 성인이 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척도를 공유하는 학문의 장이었다. 자신의 여지껏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배우는 신성한 공간. 하지만 현재의 대학은 그 말이 무색할 만큼 꿈 없는 청춘들이 당연하게 거쳐 가야하는 취업을 위한 일종의 관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내겐 변질된 모아이가 오늘날 씁쓸한 대학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상'을 버려야 한다는 잔혹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하는 우리. 그 잔혹한 시련에 이따금씩 사람들은 다바타처럼 그 시련에서 눈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눈 돌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래 사람이란 그렇게 상처 입고, 상처 입히면서, 성장해가는 존재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그 사소한 현실 도피마저도 나중에 이르러선 진귀한 인생의 양분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결국 초중반부의 다바타처럼 끝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가 혹은, 후반부의 다바타처럼 이상을 버리고 어른이 되기를 택하는가, 그 선택은 이 서평을 읽고 있는 각자의 몫인 셈이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사람들에게, 혹은 지금 대학생인 사람들에게 7월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이 시기에 특히나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위 도서는 컬처 블룸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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