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해한가의 한적한 카페. 그 카페는 떠나간 자신의 아내를 기다르는 한 남자가 홀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 날 방문한 첫 손님은 뤄이밍이었다. 침묵 속에선 그 어떤 응대도 주문의 절차도 생략되어있었다. 뤄이밍은 커피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몸을 일으켰다. 그 뒤 뤄이밍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운뒤 집으로 돌아가 앓아눕는다. 뤄이밍은 옥상으로 올라간 뒤 신비한 지령을 받은것 처럼 곧장 난간을 넘었다. 그것을 근처에 사는 부인이 보고 새된 비명을 지르고 이웃들이 뛰어나오고 이장은 구급대원을 끌고 달려온다.



며칠 뒤 남자가 동네에 장을 보러갔을 때 평소 살갑게 맞이했던 가게 주인의 태도가 냉랭하게 변해있었고, 길가에 앉아 있는 노점상들도 일은 하지만 고개를 들어쳐다보지 않았다. 남자가 장 보기를 마치고 그들의 시야에 벗어난 뒤에야 그들은 고개를 외로 꼬고 자기들 끼리 수군거리시작했다. 마치 동네 전체가 한 목소리로 조용히 분노를 게워내듯. 남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현장을 빠져나와야했다.



뤄이밍은 노숙자에게 음식을 던저주거나, 산타처럼 돈을 나눠주고, 남 몰래 기부를 하는 등 바닷가 마을에서 선행으로 유명했다. 그는 겸손했지만 금융업계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대형 은행의 요직에서 대만 중부 전체의 대출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다. 남자가 뤄이밍을 처음 만났던 날은 5년전으로 그 때 뤄이밍은 한 사진 교실에서 자원봉사로 자신의 아내인 추쯔를 가르쳤다.



벚꽃이 피기전 추쯔는 남편의 곁을 떠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계속 찾아 허메었으나,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우울한 그림자를 밝게 비추어주고 인생의 묵직함을 덜어주던 사람이 아내인 추쯔였다. 그래서 그에겐 그녀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했고,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그는 홀로 카페를 열었다.



뤄이밍의 갑작스런 자살 시도는 작은 마을의 커다란 사건이었고, 이후 경찰 두명이 남자에게 찾아와 이것 저것 질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무것도 건진게 없이 돌아간다. 소나기가 퍼붓던 어느 날 서른 살쯤 되어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폭우속을 뛰어들듯 택시에서 내려 카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녀는 다름아닌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였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증오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인적이 드문 해한가에 카페를 열어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은 현실에, 소설의 중간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그 과거는 남자의 어린 시절 부터 추쯔를 만나 추쯔가 그를 떠나기까지의 사건을 열거하였다.



이 소설을 읽기는 쉽지가 않았다. 문장 하나 하나른 은유적 표현으로 처리하면서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데, 이로인해 은유적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호흡이 길어지는데 고전소설 같이 묵직한 문체의 글이 합해지니 가독성을 낼 수 없었으며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에서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적의 벚꽃의 주인공인 그는 부모님의 죽음에 상처 받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권력과 돈의 법칙에 순응하며 잘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첫눈처럼 찾아와 흐드러지게 핀 벚꽃 같이 핀 여자가 추쯔였다. 추쯔는 빛이되어 그의 우울한 그림자를 비춰주고, 인생의 묵직한 무개를 덜어주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추쯔가 필요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아름답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도 계절이 지남에 따라 진다. 결국 추쯔의 사랑도 마찬가지었고, 추쯔는 그의 곁에서 떠난다. 나는 이 씁쓸한 비루한 사랑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추쯔와의 추억을 들여다볼수록 그 순수한 사랑의 끝이 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추쯔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채 언젠가 따스한 봄날 피었던 벚꽃같은 그녀를 계속 기다리며 다시금 자신의 곁에서 흐드러지게 만발하길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이 이야기는 사랑을 애틋함을 잘 담아내고있어 향이 깊은 커피처럼 결코 짧지만은 않을 여운을 남겨준다.

그의 문체, 돈과 권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무척 고전적이며,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원망없는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은 마치 90년대 멜로 영화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적의 벚꽃의 끝은 파멸이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파멸은 단순한 아침 드라마에 있을 듯한 가벼운 것이 아닌 조금 더 무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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