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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모든 행동은 충동과 욕구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한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 대신에 특정한 행동을 지향하는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말다툼을 하고 허풍을 떠는 등 인간의 행동을 촉발하는 것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충동일 뿐이다.
(이 책, 26, 27쪽, <1장. 성장의 원칙, 충동과 욕구>에서)
충동? 전쟁을 하는 이유가 충동 때문? 그렇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걸로 전쟁이 설명될 수 있을까? 내심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읽기 시작했는데, 거창한 질문을 던지더니 내놓은 답은 '꼴랑 이게 다야?' 싶은 그런 책. 소문난 잔치라는 말이 떠오르는. -.-;
버트런드 러셀의 명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버트런드 러셀이라고 해도 20세기 초라는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시대에 대중의 열광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그 시대였으니까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고, 영국의 백인 남성이라는 존재를 벗어나 사고하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읽어내기 힘든 버트런드 러셀의 100년전 강연집. ▩
전쟁을 하는 이유가 충동 때문? 그렇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걸로 전쟁이 설명될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거창한 질문을 던지더니 내놓은 답은 '이게 다야?' 싶은 그런 책.
거기에 번역까지 겹쳐 독자의 머리에는 쥐가 나고 독서는 미궁 속으로. ㅜ.ㅜ
1. 이 책은?
이 책은, 번역자의 말대로, "1차 대전의 참화와 꽃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 인류 문명의 파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러셀이 1915년부터 1916년 사이에 이런 주제로 강연을 하고 그 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 먼저 우리말 번역서 제목부터 좀.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이 1차대전을 바라보면서 했던 강연을 글로 엮은 책이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로 번역할 게 아니라 "왜 인류는 전쟁을 하는가?"로 옮겼어야 맞다고 본다. 번역이 단순히 단어 바꿔치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3. 과연 "왜 인류는 전쟁을 하는지" 버트런드 러셀은 밝힐 수 있을까.
개인간 싸움의 이유도 아니고 1차대전의 이유도 아니고 왜 인류가 전쟁을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을까. 개인간 싸움의 이유는 쌍방간 진술과 상황을 짚어보면 알아낼 수 있고, 1차대전의 이유라면 역사-사회-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전쟁 동기를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왜 전쟁을 하는지, 어떻게 밝혀낼까. 오히려 이런 논증의 영역을 벗어난 질문은 답이 너무 많거나 너무 뻔한 답이 나오는 게 아닐까. 버트런드 러셀은 그 문제에 손을 댄다.
4. 전쟁을 하는 이유는 충동? 뭥미?
전쟁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사실은 경제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구상하는 기술적인 어려움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전쟁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사실은 인류의 대부분이 화합보다는 충돌을 지향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
(111쪽, <3장. 전쟁은 제도다>에서)
인용은 3장에서 했지만, 책의 초입부터 줄곧 버트런드 러셀은 충동을 전쟁의 이유 혹은 동기로 지목한다. 충동? 러셀은 전쟁의 심리(학)적 동인(動因)을 찾은 것이었던가. 충동이라? 너무 뻔한, 하나마나 한 지적이 아닐까. "인류는 왜 전쟁을 하나?" - "충돌을 지향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뭥미?) 이런 식이라면 이런 문답도 가능하겠다. "인간은 결혼을 왜 하나?" - "가정을 꾸리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라든가, "인류는 왜 사회를 형성하나?" - "무리 생활을 하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라든가. 이런 언설은 어차피 논증이 불가능하다. -.-;;;
5. 간혹 만나는, 참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프랑스는 가장 문명화된 민족으로 통한다.
(88쪽, <3장. 전쟁은 제도다>에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라고 적고 있지만 그건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일 뿐이다. 그래, 프랑스가 "가장 문명화된 민족"이어서 베트남을 그렇게 오랜 세월 식민지배했던 것인가. 베트남을 비롯한 프랑스의 식민통치 역사에 대해 눈감지 않고서야 어떻게 프랑스를 "가장 문명화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같은 "문명화"의 개념이야 말로 서구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었던가. 여기서 나는 버트런드 러셀이 서 있는 지점, 그의 정치적 입장을 읽는다.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책에선 버트런드 러셀의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까지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긍하기 힘든 주장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6. 읽고 또 읽어도, 원문을 상상하며 읽어도, 뜻이 알쏭달쏭한 번역 문장들
앞서 2항에서도 적었지만, 심하게 말해서 번역은 단어 바꿔치기가 아니다. 이 책의 전부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혐의가 짙은 곳이 자주 눈에 띈다. 독자는 읽기 힘들다. 읽고 또 읽어도 뜻을 알기 어려운 문장들, 원문은 어떻게 씌어 있었을까 상상하며 읽어도 알쏭달쏭한 문장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독자의 머리에는 쥐가 난다. 이래저래 읽어내기 힘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