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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ㅣ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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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만일 자기 삶의 장르를 정할 수 있다면 비극을 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죽은 뒤에야 목소리를 부여받은 자, 말하지 못해 억울한 피해자다. 그들은 산 자를 위협하러 온 사신(死神)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어 현실로 찾아온 상담 신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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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쪽, <또다른 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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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는 납량특집, 귀신 이야기가 제격입니다. '처녀귀신'이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총각귀신'이나 '유부남귀신'도 아니고 '처녀귀신'이라 더더욱. ^^
처녀귀신만을 다루고 있지 않은 최기숙의 처녀귀신 표지.
돋을새김한 귀신 鬼자가 예사롭지 않다.
1. 이 책은? 저자는?
이 책은 우리 고소설에 나타난 '처녀귀신'을 논합니다. 이 책이 아우르는 바는, 제목처럼 '처녀귀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남녀를 총괄한 일반론으로서의 '귀신' 이야기라 해도 손색이 없으며, '귀신'의 존재 조건으로서의 '자살'에 관한 분석도 자주 나옵니다. 물론, '여자귀신' '처녀귀신'이 고소설에 유달리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파고듭니다.
저자 최기숙은 "고전 텍스트를 현대 문화와 소통시키기 위해 고전의 현대적 번역과 비평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책표지 날개에 씌어 있습니다. 눈에 띄는 저서로는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거지에서 기생까지, 조선시대 마이너리티의 초상>이란 책이 있군요.
이 책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기획한 '키워드 한국문화'의 여섯번째 시도이자 결과물이네요. 지속되면 좋을 유의미한 시도인 것 같습니다.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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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한국문화'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한국을 찾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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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의 <'키워드 한국문화'를 펴내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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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문! 여자 귀신, 처녀 귀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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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귀신들이 그토록 수많은 생명을 해치면서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현실에 전할 '말'이었다. (67쪽)
[귀신으로 나타난] 여인이 원했던 것은 오명을 벗는 일이었다. 여인에게는 사건을 '사회적'으로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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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을 떠도는 여자 귀신, 생사의 경계에 선 난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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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 감정에 솔직했던 여성은 오히려 심한 수치와 모욕을 안고 자살했다"(154쪽)와 같은 지적에서 보듯, 조선시대 여성이 자살할 이유나 맥락은 많았으며, 여성이 목숨을 잃는 것이 꼭 자살에만 국한되지는 않겠지요. 게다가 자살이라 하더라도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타살적인 상황도 적지 않았을 거구요.
이런저런 맥락과 상황을 포함하여,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은, 현실에 전할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십분 동의합니다. 이미 죽었지만 이승에 남겨진 오명을 벗기고 싶은 거겠죠. 조금 유머러스한 의미확장이 되지만, 귀신을 만나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왜 생사의 경계에서 떠도는지 이유를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
3. 탁견! 귀신 이야기에 관한 멋진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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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나타나 폐단을 바로 잡기를 원했다. 결국 귀신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해 현실에서는 그 해결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56쪽)
특정 직업이나 조건, 성별군에서 유독 사회 부적응이 많이 발생하고 급기야 자살로 이어진다면, 이는 개인의 탓으로만 볼 수 없다. (97쪽)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귀신 이야기로] 형성된 공포는 당대 사회의 건강성을 반영하는 지표가 된다. 귀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발설하는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17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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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저자 최기숙의 멋진 해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귀신에 관한, 자살에 관한, 그리고 귀신이야기에 관한 사회적-역사적 접근이 갖는 힘이자, 이 책이 갖는 또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맞는 이야기라 "아. 그렇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던 거지?"라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는 탁견들, 책을 읽는다는 게, 이런 생각들을 만나는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4. 으응?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었던 몇몇 대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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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귀신에게서는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사대부 남성 스스로 불행한 최후를 상상하기조차 싫어했기 때문일까. ... 판타지라는 상상의 공간에서조차 사대부의 몰락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41쪽)
남자 귀신은 죽어서도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끊임없이 행사하며 현실을 간섭하고 지배했다. (46쪽)
이야기 속의 남자 귀신은 가장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했을 뿐더러, 살아서 누렸던 권위와 헤택을 이어가고자 했다. 사후 세계에서까지 가부장제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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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존경받는 남자 귀신, 현실을 통제하는 파수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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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나가면서 전체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으응?"하는 의문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었던 대목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어차피 역사속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은 지적을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한편, 책 전체에 걸쳐서 견지되고 있는 듯한 여성주의적 시각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제가 여성주의적 시각에 동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그것에 대해선 충분히 동의합니다), 그것이 조선시대 같은 역사속 남성 위주 가부장제 사회를 향하고 있어서입니다. 가부장제가 옳다는 것도 아니고 여성주의적 시각이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속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법이 공허하거나 무의미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5. 분석! 그저 혀를 내두르게 되는 파고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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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설에는 주인공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실제로 자살을 기도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줄거리가 정리된 고소설 865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자살 일화가 나오는 작품은 그중 112편으로 전체의 13퍼센트를 차지한다. 자살 기도자는 모두 147명으로, 한 사람이 여러 번 자살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기 대문에 횟수로 따지면 총 156회의 자살이 발생한다. 이 중에 여성 자살을 다룬 작품은 103편이다. 자살을 시도한 여성 인물은 모두 128명이고 총 횟수는 141회다. 남성 인물의 자살을 다룬 것은 총 16편이며 자살자 수는 19명이고 횟수도 같다. 자살 시도는 하지 않고 자살 충동만 표현한 작품은 4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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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쪽, <자살한 여자, 귀신이 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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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우 분석의 엄두가 나지 않을, 거의 천 편의 고소설을 분석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자살의 성별과 횟수를 변수로 파고들어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이 혀를 내두를만 합니다. 한 사람이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한 경우를 계산하는 대목에선 그야말로 "이 사람이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죠. 이어지는 123쪽 125쪽에서 이에 버금가는 자료와 통게를 내놓고 있다죠.
고소설에 등장한 자살, 귀신, 처녀귀신, ... 등등의 이야기에 관심이나 호기심이 동하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어진 것은 바로 이런 대목들 때문입니다.
6.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우리 고소설에 나타난 '처녀귀신'에 관한 연구.
- 이 책이 아우르는 바는, 제목처럼 '처녀귀신'에만 국한되지 않음.
- 남녀를 총괄한 뭇 '귀신'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적고 있음.
- '귀신'의 존재 조건으로서의 '자살'에 관한 서술과 분석도 자주 등장.
- 물론, '여자귀신' '처녀귀신'이 고소설에 유달리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깊이 파고듦. ^^
p.s.
2010년 7월 15일(목)부터 7월 17일(토)까지, 3일간 읽었습니다. 책 두께도 두껍지 않고 판형도 작은 편이어서 오래 걸려 읽을 책은 아닙니다. 물론, 내용도 어렵다거나 할 정도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