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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시작 - 알, 새로운 생명의 요람 ㅣ 사소한 이야기
팀 버케드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5월
평점 :
5그램[1], 알egg 껍질에 담아 놓은
깊은 철학적 투영(投影)
서평, <가장 완벽한 시작(알, 새로운 생명의 요람)> 출판사 MID(엠아이디)
좋은 책을 읽고 난 뒤의 두근거림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새벽 어스름한 빛을 바라보며 책을 거두었던 때가 어느 때였는지.
그러고 보면, 나도 무척 무심한 사람이다.
아니.
실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깊은 소양을 갖춘 좋은 책 한 권으로 두근거림을 얻었으니 나도 꽤 감성적인 사람이다.
쓴 이의 노력을 생각해 보자면 -그런 일이 감히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이런 책이 한정된 분량에 실려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그걸 또 한정된 시간 안에 읽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책을 읽어가며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그 당시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깊이 사유하는 것이겠거늘…….
모든 것을 ‘한정된 자원 속에서’라는 명제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현 시대의 아쉬움이 크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글자, 한 획도 소중하게 다루어 좋은 책으로 나오기까지 애쓰신 출판사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모름지기, 책을 한 권 읽음에 있어서 ‘드디어, 완성(完成), 완료(完了)’라는 거만한 표현보다는 언제나 새롭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다지게 되었다.
그 옛날, 장자(莊子)도 석공의 비유를 들어가며 가죽나무가 쓸모가 없어 저리 자란 것이다.라고 가르침을 주면서 새로운 것을 향한 발걸음을 아끼지 않았던 것을 살펴보면, 나 같은 이야말로 책을 읽음에 있어 그러한 가르침을 저바릴 수 있겠는가?
잘 알지 못했던 분야(자연과학)를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그대로 풀어낸 거라고만 여겼는데 그렇지 아니하였다. 군데 군데 작가의 숨겨 놓은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상당하였다.
그 의미란 말할 필요도 없이 작가의 철학이었다.
생명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이러한 글을 쓸 수 있지나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따분한 과학책이라고 멈칫거린 사람이라면 잠시 그 마음을 접어 두고 내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 보기를…….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이다.”
-헤세 <데미안>
1. 줄탁동시(啐啄同時)
알 껍질을 깨뜨리는 일을 이야기 함에 있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있을까?
줄(啐)이라 함은 부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고, 탁(啄)이라 함은 어미 닭이 바깥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이른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알고 있을 터.
비단, 껍질을 깨뜨리는 일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진정한 철학적 소양은 이처럼 사유의 범위를 어떤 식으로 넓혀가느냐에 따라 그 류(流)를 달리하는 것이나 아닐지.
다음의 본문 내용을 통해 잠시 살펴 보도록 하자.
“동시에 암컷은 앞으로 털썩 무너지면서 부리로 알을 붙들고, 날개를 떨어뜨려 알이 굴러가지 못하도록 한 번 더 보호한다. 암컷은 알을 잠시 바라보는데, 짐작건대 알의 모양을 뇌에 각인 시키거나 그 모양을 상기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그러고 나서…(중략)”
8장, 위대한 사랑 : 산란, 알품기, 부화 中
‘암컷은 알을 잠시 바라보는데’ è 저자의 깊은 감성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차례 곱씹어 보며 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저자의 입장이 되어 바다오리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바다오리가 되어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를 바라기도 하고, 또 이제 막 세상을 나와 제 어미를 바라보는 아기 오리가 되어 보기도 하고(책 속에도 저자가 이런 식으로 상상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바다오리가 아주 좁아터진 벼랑 끝에서 알을 낳을 때, 그 알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생리학적으로 어찌 어찌하는 것은 오랜 진화의 결과물, 이라는 설명 뒤에.
이처럼 <가만히(잠시) 바라보는데 >라는 표현을 써 가며, 느닷없이 시적 화자가 되어서는 나를 이끌어 시(詩) 세계의 어디쯤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디라 함은,
도화(桃花) 한 가지
박목월
물을 청하니
팔모반상에 받쳐들고 나오네
물그릇에
외면한 낭자의 모습.
반은 어둑한 산봉우리가 잠기고
다만 은은한 도화 한그루
한가지만 울넘으로
영(嶺)으로 뼏쳤네.
저기 저 詩의 한 대목이 떠올라 물그릇에, 외면한 낭자의 모습처럼 바다오리 어미가 알을 깨고 나온 제 새끼를 바라볼 것만 같다.
저자가 감사의 말을 전하며 옮겨 둔 <바다오리> 제목의 ‘하이쿠(はいく, 일본 정형시)’에서 이러한 심성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다오리
온갖 색이 あらゆる色
아래로 굽이치는……
바다오리 알
자연과학을 연구하던 이들은 대부분 철학자이기도 했으니 이 책을 집필한 저자 또한 그러한 감성이 가득 넘쳤을 듯.
그가 그의 친구, 크리스 월뱅크 Chris Wallbank와 이뤄낸 그림을 보라. 이보다 더 큰 울림이 있을 수 있을까?(책에는 소개만 되어 있어, 그의 사이트에서 빌어 왔다)
출처 : http://cwallbank.blogspot.kr/
2. 무릇, 네 새끼가 내 새끼가 아니냐?
책을 거반 다 읽은 어제 저녁에는 간만에 SBS 인기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다 보니 때마침, 물까치가 공동육아를 한다는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소개되었다.
머리에 베레모 같은 녀석을 쓴 녀석들인데 둥지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쪼아대는 통에 살펴 보니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였다. 같은 베레모를 쓰고 있으니 한 마리가 연신 날아든다고 생각했을 수밖에.
이 책에는 소개된 바 없지만, 물까치는 공동육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 새끼가 네 새끼고 네 새끼가 내 새끼인 셈이다.
그러니, 내 새끼, 네 새끼를 해칠 만한 무언가가 나타나며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든다.
또 한 가지 이야기.
오래 전,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선배는 베테랑 보험손해사정사였다.
보험 설계보다는 사고의 경중을 따져 손해 사정하는 일을 주된 업으로 하고 지냈는데 하루는 사고 현장에 나가 보니 계란 장수와 실갱이가 붙은 모양이었다.
얘기가 그랬다.
가보니 가벼운 접촉사고여서 얼른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였는데 과실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계란 장수가 계란 전체 값을 물어달라고 생떼를 썼던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충격이 가면 금이 간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요지였다.
한참이나 시간을 끌어도 결판이 나지를 않자, 선배가 썼던 방법(이 방법이 옳다는 건 아니다).
“그래요? 전부다 금이 갔다는 거죠?”하고는 달걀을 한 판 꺼내, 한 알씩 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한다. 한 판을 다 깨고, 다시 꺼내어 다시 한판을 더 깨고. 그런 식으로 한 열 판은 깼던 모양이다.
사색이 된[2] 계란 장수가 울면서 그만!이라고 말하더란다.
다시 본문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겠다.
1960년대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자였던 마가렛 빈스는 알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중략)
새끼의 찰칵거리는 소리는 인접한 알의 부화과정을 늦출 수도 있고 서두를 수도 있었다.
역시 8장, 위대한 사랑 : 산란, 알품기, 부화 중 일부 발췌
(말할 필요도 없지만 1~7, 9장은 직접 읽어보시길)
예산이 중단된 직후 사람들이 기억하는 최악의 폭풍우들이 기후 변화의 일부로서 닥쳐왔고 2014년 봄에는 유럽의 서부 해안지방을 따라 50,000마리 이상의 바닷새가 목숨을 잃었다.
9장, 이야기를 마치며 : 루프턴의 유산
긴 말 필요 없다.
깊은 감성의 공유는 제 福이다.
어느 만큼의 깊은 감성이 있어야 저 경지에 이르러 ‘알egg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깊은 애정이 있어야 금이 가버린 달걀을 땅에 던질 때 저렇게까지 울음이 터지더란 말이냐. 50,000마리 이상의 바닷새가 목숨을 잃었다는 저 대목을 가만히 묵상해 보라.
내 새끼도 내 새끼 같지 않은 세상.
담담히 자연의 세계를 그대로 들려주는 저자 팀 버케드Tim Birdhead 에 나는 그냥 물들어 버렸다. 책 날개 속에 감춰어 둔 그의 미소를 본다면 그가 그러고도 남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만큼까지 끌어내 준 저자의 철학에, 매끄러운 번역에, 보이지 않는(그래서 측량하기 어려운) 출판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다시 한번 전한다.
작은 용기를 내어,
제목에 적어둔 내게 있어 특별한 의미의 5그램이란 무엇인지 남겨 두기로 한다.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5그램입니다
춘의역이었던가?
나를 가만히 올려다 보신 할아버지께서
이제 곧 내릴 테니 잠시 비켜 달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그러고 보니 이분.
아까부터 나랑 무언의 사인을 주고 받고 계셨구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내려다 본 노인석의 할아버지께서 세상 그렇게 간절한 기도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다.
깍짓손을 한 손을 한참만에야 떼신 할아버지.
적어도 80은 넘으셨을 할아버지의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켜주셔서 감사 드린다는 기도의 내용이 마음 속 깊이 전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 나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하루, 일분일초를 귀하게 쓰실 것만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정감 깊었다.
내리셔야 하는 역이 얼마남지 않았는지 할아버지께서는 의자에 기대어두었던 지팡이 두 개를 잡으셨다. 이제는 두 다리만으로 서는 것은 어려울 테니 저 지팡이에 체중을 나누실 테다.
겨우 일어나셔서 자리를 잡으시니 이번에는 내 뒤에 계시던 초로의 남자가 혹시라도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여 두터운 손을 할아버지의 등허리께로 가만히 갖다 대셨다.
내내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저녁이었다.
분주한 일상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나는 아니라고 해도 실은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고 거기에 더해 무감정인 상태가 많았다. 어쩌다 보늠 거울에 푸석해진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은 저녁을 마치고 EBS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에 '꿀벌이 평생 동안 모으는 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500g, 300g, 100g 등 자신이 추정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질문을 건넸던 질문자의 대답이 참으로 뜻밖이었다.
"5그램입니다."
저렇게나 열심히 사는 꿀벌이 평생 모으는 꿀이 고작 5그램이라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픈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그날도 분주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감정이 격해졌다. 거기에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평생 남는 거라곤 5그램 만큼의 벌꿀이라면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일까?
문득 내 평생에 남겨 둘 수 있는 게 5그램 만큼의 벌꿀 정도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몹시 서글퍼졌다.
아니, 아닐테지.
그렇게 남기지 않을 테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일로 서글퍼하진 않을 테다.
그런 때라면 아까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테다.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도 감사했노라는 모습.
말씀해 준 적 없지만 분명히 느끼할 만큼의 온화함.
그날 일을 떠올릴 테다.
나의 노년에도 그런 기도가 올려질 수 있기를...
[1] 5그램은 ‘상모솔새’라는 아주 작은 새의 무게이다. 그 새가 자그마치 12개의 알을 품는다. 동시에 5그램은 내게 특별한 의미의 숫자이다.여기에서는 상징성을 가미하고자 껍질의 무게를 상모솔새의 그것에서 가져왔다
[2]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 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