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카의 뇌 -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36
칼 세이건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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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사람처럼 그냥 좋아하는 작가. (작가라는 이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칼 세이건이 나에게 그렇다. 그냥 좋다.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 비교가 어렵지만, 《브로카의 뇌》는 그가 써온 에세이를 조금 다듬고 보강하여 엮은 책으로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과학책이었다. (물론 조금 더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 <우주의 이해> 때 배운 내용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잠깐 반짝할 때의 뿌듯함이 동시에 스치는 과.학.책.이라는데 강조를 둔 말이다)

부제처럼 '과학과 과학스러움'의 경계를 가르는 그의 생각이 글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2부 역설가들에서 과학처럼 보이는 과학 아닌 것에 대한 경계심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그러다가도 SF소설에 한해 관대한 그의 태도가 왠지 귀여웠다. 물론 귀여운 그의 태도엔 어김없이 명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과학자의 과학적 상상력처럼 사회에 SF소설이 미래를 위한 중요한 생존 수단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소설보다 영화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란 매체의 중요성까지 높이 평가한 그의 생각이 맞아들어갔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그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지난 과학사에서 끌어온 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탐구와 이를 바탕으로 과학이 어떻게 과학다운 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한 애정이 어린 서술은 명료함과 수려함을 겸비한 그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더드가 누군지 모르기에 글은 썩 재미없었지만, '18장 벚나무를 지나 화성으로'라는 제목이 참 예뻐서 인상적이었다) 비교와 관찰이 빠진, 두루뭉술한 설명이 아닌 앞 혹은 뒤에 이유와 배경이 들어간 그의 글은 탁탁 그의 생각을 확인하며 느끼는 산뜻함이 좋았다.

그는 물리학의 눈부신 성장을 체감하던 시대, 과학자였다. 과학 내 다양한 학문분과 내 성장이 있었지만, 물리학 그중에 천문학처럼 생경하고 낯선 시각적 충격을 대중에게 안겨준 학문분과는 없었을 것이다. 밤하늘로 가늠하던 사람에게 우주란 광대함이 주는 벅참은 지식의 유무를 떠나서 주는 여운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물리학의 시대에서 생물학(생명공학)이 과학의 위상이 옮겨졌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당당하고 매력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역시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일관된 자세에 있다. 거기엔 늘 완전하지 않다는 의심과 그럼에도 이 방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 중 최선이란 단단한 믿음이 있다. "과학은 더 복잡하고 미묘하고 우주를 훨씬 풍부하게 드러내 주며 우리에게 경외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또 과학은 참되다는, 특별하고 중요한 미덕 - 이 단어가 어떤 의미가 있든 - 을 가지고 있다"라는 그의 생각이 꽤 섹시했다.

"살면서 가장 흥분되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운 시간은 단연코 무지에서 벗어나 이 근본적인 주제들을 알게 되는 시간이다. 의문을 품는 데에서 시작해 이해로 끝나는 시대가 이제 시작되었다."

아, 이런 멋진 서문을 쓰는 작가를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다니.역시 나의 무지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그의 또 다른 책을 읽으며, 그를 알게 되는 시간이 나에게 또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그런데 칼 세이건 책은 출퇴근길에 읽기 너무 크고 무겁다. 한동안은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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