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 2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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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돌고 돌아 만났다. 왜 이렇게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만남은 이루어지기 힘들었는지. 두 권에 걸쳐서 펼쳐진 이야기 내내 엇갈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여느 연애 소설처럼 답답하기보다 안타까웠다. 약 이십 년에 걸쳐 만나고 헤어지는 선택이 오로지 두 사람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나 2』는 『아메리카나 1』에 이어서 미국으로 간 이페멜루와 영국으로 간 오빈제의 이야기를 이어서 보여준다. 『아메리카나 1』에서 이페멜루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아메리카나 2』에서는 오빈제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이페멜루가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아 답답한 오빈제의 마음에서 말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던 오빈제 역시 이페멜루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불법 이민자로, 영국 사회에 그림자처럼 살아가던 그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와 이페멜루였다.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이지리아를 떠나,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찾아온 땅 영국은 녹녹치 않았다. 이페멜루의 시선에서 여성 (불법)이주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문제와 또 다른 남성 (불법)이 주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문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영국과 미국이 인종을 두고 사뭇 다른 문화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오빈제는 보이지 않는 계층과 계급이 존재하는 영국 사회에서 계층과 계급에 들어가지조차 못하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볼 때 보이는 문제에 대해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내가 보기에,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같이 일하지만 같이 어울리지는 않고, 여기서는 같이 어울리긴 하지만 같이 일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라는 말에 "제 생각에 이 나라의 계급은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자기 위치를 알죠. 심지어 계급 사회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든 자기 위치를 받아들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불법 이주 노동자임이 탄로났고, 더 돈을 줄 수 없어 영국 땅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간다.


이페멜루 역시 미국에서 힘겨웠던 시간을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조금씩 견디는 방법을 터득한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수없이 검열하고 또 검열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글은 그녀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양이 된다. 이페멜루 본인이 글을 썼지만, 때로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글을 부르는 것처럼. 글을 쓰며 막막하고 막연하게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어간다. 이를 그녀가 스스로 알아채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 속 서사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또 블로그의 글은 공공의 장에 놓여져, 다른 사람의 생각이 더해지기도 하고 그 더해진 생각을 이페멜루가 다시금 함에 따라 그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가 마지막으로 알았던 그녀는 이 블로그에 쓰인 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기에 그는 일종의 상실감을 느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블로그의 글에서 오빈제는 물리적 거리만큼 시간이 주는 사이를 절절히 느낀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믿었던 청소년기부터, 인생에서 가능한 것보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 서글펐던 청년기를 지나던 두 사람은 이메일과 친구들이 전해주는 소식으로 서로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다. 하지만 이십여 년의 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었고,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두 사람의 사이는 끝난 것일까? 싶은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서로에게 되어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알아. 받아들이고 우리 인생을 시적인 비극으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 혹은 반대로 그냥 저질러 버릴 수도 있었고. 난 지금 저지르고 싶어. 너와 함께하길 원해. 코시는 좋은 여자고 내 결혼 생활은 그냥 흘러가게 두기엔 만족스러웠지만 처음부터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뭔가가 빠졌다는 걸 늘 알고 있었지. 나는 부치를 키우고 싶고, 매일 보고 싶어.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연기를 했지만 언젠가는 그 애도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만큼 자라겠지. 오늘, 집에서 나왔어. 일단은 파크뷰이스테이트에 있는 아파트에 있을 거고,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부치를 보고 싶어. 내가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도 알고, 네가 새로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아. 네가 마음이 복잡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사랑의 영역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알아챈다. 서로에게 이끌리고 있음을. 애써 친구 사이로 포장해 그 마음을 서로에게 주변에 숨겼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었고. 결국 두 사람은 다시금 만난다. 연애 감정이 소설에서 중요한 축을 담담하고 있지만, 이민자로 혹은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한 다양한 인생의 단면은 두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나'를 만들었다. 그 성장을 '여유'로 그려낸 저자의 '침묵'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때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있는 여유, 상대의 생각을 들어줄 수 있는 자세 그 모든 걸 '침묵'으로 대화를 지우고 분위기로 채운 글이 인상적이었다.


『아메리카나 2』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흑인과 백인으로 나뉜 인종 차별 문제에 다층적인 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흑인과 백인의 갈등, 동양인과 서양인을 두고,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별의 문제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배제하지 않고의 문제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또 큰 테두리에서는 흑인과 백인 양쪽 인종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나는 인종 문제의 양상이 다르며, 또 흑인 내에서도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흑인과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흑인이 겪는 어려움은 다르다. "흑인의 고충과 백인의 두려움을 동일시하는 건 부도덕"한 문제 이 하나만으로 문제를 명제화하기에 우리 사회는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개인의 수만큼 이 문제가 미치는 영향이 깊고 동시에 얕다.

그 다른 양상들을 이페멜루와 오빈제가 미국과 영국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 겪는 상황을 통해 저자는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다. 내가 궁금했던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진행 중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 여행자로 외국을 경험해본것, 소설을 통해 공감한 것 외에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진행중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 외에,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를 헤아리는 것으로 충분한지. 참 어려운 문제다. 끝으로 마음의 쉴 자리가 없어 외롭고 또 괴로운 삶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단단해지기 보다 서로가 각자가 마주한 어려움을 단단히 견뎌낼 수 있을 때 만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해지기까지 이십여 년이 걸린 점이, 그리고 그 이십여 년간 지금 이 순간도 이어지는 차별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소설은 연애에 있어서는 극적으로, 삶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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