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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냥 글이 아닌,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을 썼었고, 나만 보는 일기를 썼고, 여행문을 썼고, 지금은 서평을 열심히 쓰고 있다. 아직 난, 내 마음에 드는 나의 글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쓰고 있다. '잘'은 아니지만, '소신껏'. 문소영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를 읽었다. 1부 게으르게의 모든 글이 좋았다. 3부 엉뚱하게를 읽으며 지금의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모습을 발견해 반가웠다. 저자는 자신의 눈에 걸리고, 마음에 박힌 모든 것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옮기는 사람이었다. 회화, 소설, 시, 영화, 광고 때로는 우리 사회까지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이야기로 옮긴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반가움'이었다. 내가 소신껏 쓰는 것이 아니라 잘 쓰고 싶은 글을 '잘' 쓰고 있는 사람의 글을 만나서. 나는 정말 반가웠다.
게다가 이왕 일을 하면 그 일로 뭔가 세상에 없는 걸 만들고 싶다는, 내 게으른 성격에 어울리지도 않는 드높은 야심이 순간순간 일어나곤 한다. _ <지독한 게으름> 중에..
문소영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에세이지만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읽은 에세이들과 달리 색달랐고, 그래서 난 좋았다.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각 장의 이름에서 자아내는 감정을 느낀 순간을 쓴 글은 감정만큼이나 다양하고 풍성했다. 그래서일까. 책을 다 읽은 후 내가 보고 있는 것 그 무엇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린 나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그런 나를 마주해, 다행이란 생각이 스쳤다. '좋다', '괜찮다.', '재미있다.','이상하다.'라는 단어로 뭉뚱그려버린 나의 생각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구체적이고 솔직한 글이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느낀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글의 형태로 읽어도 와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광대하고 게으르게》에 담긴 글처럼 솔직하고 뭉뚱그리지 않은 글이었다.
"큰 영광과 큰 슬픔을 말해 주는 고독한 산들"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나무의 모습에서 시인 브론테가 보였다. 나는 저렇게 홀로 우뚝 설 수 있을까. _ <심리테스트를 하는 심리> 중에..
《광대하고 게으르게》의 많은 글 중에 다양한 예술 오브제 속 표현을 활용한 글이 좋았다. 예를 들어 <심리테스트를 하는 심리>는 "내가 누군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고 궁금하기 때문"인 감정과 심리를 「타타타」라는 노래와 『폭풍의 언덕』의 저자 에밀리 브론테의 시 Stanza,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었다. 문장에 감정만 나열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독서의 경험에서 오는 감정을 글 한 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었다. (1장과 3장의 모든 글이 그랬다.) 내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것이 건네는 이야기를 내 안에 쌓인 지식과 경험과 어떻게 연결해야할지 모르는 나는 반가움과 함께 부러움을 함께 느끼며 읽었다.
왜 세상에 추악한 부분이 많다고 해서, 그와 함께 엄연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만들면 안 되는가.
나는 아름다움과 평온을 보면서도 간혹 씁쓸함을 느낀다. 단지 이를 더 이상 '과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_ <프로불편러가 될 수 밖에>
이 책은 예술작품에 대한 글만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예술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발견력'은 다른 것을 보았을 때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현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느낀 자신의 불편함을 말하는 글 중 어떤 것은 그림을 해석한 글보다 더 좋았다. 저자가 느낀 불편함에서 시작한 글은 마지막에 이르면 나도 마주했을 불편함이라는 걸 금새 깨달을 수 있었고, 그 불편함을 전하는 방식이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함을 말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 이유는 그 불편함에는 감정적 분노가 아닌, 감정을 정제한 후 읽는이의 생각을 묻는 질문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단단한 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빗겨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함에 부당함을 말하고, 잔인한 폭력에 폭력을 말하는 글에서 불편함이 아닌, 마음에 필요한 여운을 남겼고 이를 느낄 수 있어 나는 좋았다.
나는 참 광대한 세상을 게으르게 바라보았던 사람이었구나.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미술 전문 기자가 쓴 글 답게, 예술을 정말 많다. 그 예술이 담은 곳이 광대한 우리 사회이듯이 저자의 시선이 닿는 곳도 참 광대하다. 그 광대한 세상을 한눈에 보겠다며 두루뭉실하게 보지 않는다. 내 눈에 띈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걸 글로 풀어냈다. 저자의 게으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나처럼 "나는 참 광대한 세상을 게우리게 바라보았구나"라는 반성했다.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생각해보며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이 에세이를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