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난 행복해
옌스 크리스티안 그뢴달 지음, 진영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나는 행복한데도 울고 싶어, 어떤 마음도 나의 기쁨을 온전히 함께하진 않아서야.

가끔 나는 슬픈데도 웃어야 해, 두려움 어린 내 눈물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해.

B. S. 잉에만


작년 10월 연극 <일루전>을 보고 왠지 비슷한 감정이 담긴 책인 듯싶어 샀다. 이야기의 주제는 달랐지만, 서로 친한 두 부부가 등장한다는 점과 70대에 이르러 삶을 돌아본다는 점 그리고 네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껴 읽었다. 책장에 한참 동안 놓아두다가 짧은 이야기의 소설이 읽고 싶어 꺼내 읽어 보았다.


소설은 아메리카바이에서 혼자가 된 엘리노르가 자신의 친구이자, 두 번째 남편 게오르그의 첫 번째 아내였던 안나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고백하듯 말하는 소설이다. 시점은 순서대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푸념 섞인 넋두리인 듯 이리저리 시점이 이리저리 오간다. 하지만 시점이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해서 소설을 이해하기에 힘든 건 아니다. 소설 속 핵심 사건과 서서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난 행복해》에는 엘리노르, 안나, 게오르그, 헨닝 네 사람이 등장한다. 엘리노르는 미혼모의 자녀였다. 가정을 이루지 않고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삶이 그녀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는지, 그녀는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헨닝과 결혼한다. 헨닝을 사랑했지만, 서서히 그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결혼과 함께 살게 된 새로운 공간에서 안나와 게오르그 부부를 만난다. 엘리노르는 진심으로 안나와 게오르그 부부를 좋아했고, 두 부부는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안나와 헨닝은 스키장에서 눈사태를 맞아 죽고 만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안나와 헨닝이 불륜 사이였다는 것이다. 배신과 죽은 그 뒤의 삶에 있어 남다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던 엘리노르와 게오르그는 결혼을 한다. 엘리노르는 안나와 게오르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의 엄마가 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게오르그가 죽음을 맞이한 후, 엘리노르는 아메리카바이 작은 집에 혼자서 산다. 《가끔 난 행복해》은 아메리카바이에서 엘리노르가 혼자 자신의 삶을 돌아본 기록이다.


사랑은 처음에 돌발적으로, 그다음에 오랜 기간 작업하는 프로젝트처럼 사실들을 쌓아올려, 그래서 때가 되면 추문이며 불화며 극적인 사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게 되지. 그렇지. 사랑을 빼앗긴 이들은 애쓰고 이해해야 할 뿐이야. 거절당한 이들은 우아해져야 하고, 현명하게도 우린 그저 서로를 빌려주었을 분이라는 걸 깨달아야 해. 연인들은 힘으로, 혹은 힘을 닮은 무엇으로 권리를 독차지하며 그 무엇도 설명할 꿈조차 꾸지 않겠지.

85쪽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 엄마의 사랑에서 시작한다. 첫사랑인 호프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 시그리드, 그녀는 평생 동안 자신의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문제는 그녀가 사랑한 사람이 사회적 통념상 용인될 수 없었던 독일군이라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 사랑을 평생 동안 간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일평생 동안 간직한 사랑의 영향이 그녀의 딸, 엘리노르의 삶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뒤에 태어난 존재"라는 의식을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에리노르는 누군가 관계 맺는 중간중간 계속해서 허전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네가 남기고 떠난 그 자리를 대신했어. 안나, 나는 네 삶을 물려받았어, 한때 네 웨딩드레스를 물려받은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았어."라고 말하는 엘리노르의 말은 비극적이었다. 그녀는 자신 자체로 사랑받는 길이 아닌 누군가의 부재 뒤에 채워진 존재로 자신을 넣는 삶을 살았다는 말은 마음 아팠다. 어쩌면 유년시절에 겪은 것이 그녀의 삶 속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다.


헨닝과의 사랑, 게오르그와 결합 그리고 안나의 부재를 채우는 과정까지. 그녀는 순간순간 행복을 느꼈지만 어느 자리도 자신의 자리인 듯 느껴지지 않았다. 게오르그가 주는 삶의 평온함이 있었지만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안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들은 지금까지 몰랐을까? 이제 게오르그가 더 이상 이곳에서 날 도와주지 않기 때문일까? 난 언제 다시 이방인이 되었지? 내내 그랬나?" 적어도 게오르그와 안나가 만든 가정에 끼어들었고, 게오르그가 죽은 뒤 자녀들과 교류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모습을 보면 재혼한 가정에서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던 듯싶다.


넌 내가 말하는 걸 듣지 못해, 그게 최악이야. 넌 기억하지 못해. 넌 살아 있지 않아. 난 다만 사실들이 쭉 이어져 누적된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네게 말을 건네는 거야.

74쪽


엘리노르는 왜 어머니가 아닌 안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게오르그가 아닌 안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일까.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안나' 한 사람이라는 점이 나는 흥미로웠다. 왜 안나였을까. 그녀가 안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안나가 자신과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너는 언제나 관대했지, 언제나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그렇길 바랐어. 나 또한 시기하는 마음 없이 기쁘다고 말했을 때 내가 정직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엘리노르의 말속에 안나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조금은 마음에 그늘이 있었던 엘리노르와 정반대였다. 안나는. 눈사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안나의 삶은 엘리노르가 동경했던 삶을 살았던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삶 속에 엘리노르는 들어갔다.


게오르그는 무척 사려 깊은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람이 정말로 나를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해. 시간이 흐르고 뭐랄까, 결국 우린 연인이 되었어, 그저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젊었을 때 우린 습관의 힘을 과소평가했지, 그리고 습관의 미덕을 과소평가했어.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12쪽


그리고 깨닫는다. 안나의 삶이 자신이 정말로 행복함을 느끼는 삶이 아니라는걸. 게오르그와 결혼, 쌍둥이 자녀, 경제적인 어려움 없는 생활이 펼쳐졌지만 그녀는 그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한다. 만족을 느끼지 못하던 그녀는 게오르그가 죽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한 후 깨닫는다. 혼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한 '나'로 존재하는 시간임을. 물론 때때로 사무치는 외로움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난 사람이 그리워, 내 남편, 우리 남편 말이야. 너무 그리워. 혼자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 그럴 때면 아메리카바이로 이사 온 게 실수가 아니었나 싶어. 그이가 돌아와도 나를 찾지 못할 거야. 난 미친 게 아냐. 인간은 이성으로 갈망을 달래려 한 적 없고, 자신의 갈망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어. 그저 그이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그이를 편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건 결코 단어들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어. 그게 내가 너에게 말을 건네는 이유야.
159쪽


게오르그가 그립고 안나와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때로는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있다. "사랑이 더 이상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 될 때는 언제일까?"를 곱씹으며, 어머니의 첫사랑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과 관계를 떠올리다 보면 찾아오는 외로움을 그녀 역시 느낀다. 그럼에도 과거를 차분히 돌아보며 아메리카바이에 홀로 고독을 맞이한 이 순간이 행복임을 깨닫는다. 지금 자신이 찾은 온전한 행복을 느꼈을 때 가장 행복에 가까웠던 안나에게 동등하게 말할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일까? 다른 더 깊은 뜻이 있는 걸까? 그 의미까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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