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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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선선해지면, 괜스레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읽고 싶어진다. 가을은 문학 특히 시의 계절이라고 말하듯.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그의 글은 내 취향에 맞추어 읽을거리를 안겨준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가을은 헤르만 헤세의 계절이다. 그의 글을 읽는 걸 즐기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글이 주는 기쁨을 느낀 이후에는 맛있는 사탕을 아껴 먹 듯. 그의 작품을 내가 지칠 무렵에 꺼내본다. 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금 읽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작품과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나, 비슷한 고민과 사유를 담아내 아쉽다고 말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변주한 그의 글은 자신의 주관이 올곧게 담겨있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토대를 조금씩 바꾸는 솜씨로 읽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무엇보다 그의 글이 좋은 이유는 혼자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그가 좋은 생각 동행자가 되어준다. 내 생각에 맞추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점에 서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굉장히 읽고 싶어졌다.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을 읽었다. 표지가 굉장히 예뻐서. 내 취향이어서 골랐는데.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짧은 수필(혹은 소설)과 중편 소설이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첫사랑이 주는 감정을 저릿하게 표현한 글들은 아니었지만, 서투른 감정과 생각을 반성하듯 써 내려간 글은 색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말에 모두 공감할 수 없었다. "사랑받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라는 말은. 좋지만, 여전히 받고 싶은 나의 감정이 앞서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에게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친구들에게 연애 상담해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란 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우리가 괴로워하며 참고 견디는 것에 비해 얼마나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있다고 생각하죠.”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얻고 남기는지. 행복만큼이나 고통이 동반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랑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우리 삶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그는 글 속에서 말한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사랑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가 헌신적으로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가장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아직은 그의 이야기에 동의하기란 어려웠다. 가슴 절절한 이별이나, 아릿한 짝사랑의 감정이 나의 마음에 감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사랑에 메마른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저 멀리 있는 이데아처럼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일관된 그의 말에 설득되고 안되고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책은 언젠가 또 읽을 테니까. 그렇다면, 언젠가 그의 말에 공감할 날이 있을 것이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 차근차근 반박하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수많은 사랑을 지나오고 또 지나쳐온 그가 하는 사랑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왜 세상에 나왔는지에 맞추어 글을 읽을 가치가 있다. "오늘 나 스스로 선택한 이별은 패배와 의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정말 굴욕적이었다." 어쩌면 책 속 구절처럼 책을 읽는 내내 사랑 자체를 내가 의심하고 또 의심했기에 이 책을 읽고 얻은 것이 많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글을 그저 수려한 문장만 즐겼다면, 그건 퍽 아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 문장 뒤에 숨겨진 맥락과 사유와 만나지 못한 독서가 못내 아쉽다. 다음에 그와 사랑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 속 대화를 나누길 고대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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