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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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음악 한 곡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 한 사람의 존재 안에 깊이 자리 잡는다. 어떤 음악은 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개인과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 클래식이다. 클래식 음악은 음악으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준다. 말이나 글 없이 악기가 내는 소리로 (합창, 오페라와 같은 장르 제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는 곡을 만드는 작곡가는 곡을 빚는 도예가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 헨델,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말러와 같이 훌륭한 곡이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사람은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그 연주자들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지휘자다.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클래식으로 남아,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온 수많은 지휘자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곡가를 기억할 뿐, 지휘자를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한 지휘자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개성 있는 모습이다. 1935년 생이라고 하는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학생들 중엔, 연주는 확실히 잘하고 내는 소리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데 음악이란 걸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 못 하는 사람도 가끔 있어요. 자질은 있는데 깊이가 없는 거죠. 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선생들이 오디션 때 아주 고민해요. 그런 사람을 받아도 될지 말지.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을 넣고 싶거든. 소리가 그렇게 자연스럽고 훌륭하다면, 여기로 데려와서 음악이란 걸 철저하게 가르치면 그만이니까. 그럼, 그게 '잘 될' 경우에 그렇다는 뜻이지만,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어요. 천성적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사고방식이나 자세는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한마디로 음악계의 거장이다. 그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났다. 이름만으로 작가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그 역시, 문학계의 거장이다. 두 거장이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을 엮은 책이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지휘, 음악을 가르치는 것 등 클래식 음악 자체에서 그 저변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분야에서 거장의 자리로 올라서는 건 쉽지 않다. 몇 세기 전의 음악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했기에 가능했다. 그의 과거가 인터뷰 속 문장에서 툭툭 튀어 오른다. 그 순간을 섬세하게 이끌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리드미컬한 대화법에 두 사람의 대담은 책의 두께 이상의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베토벤. 브람스. 말러. 지휘자. 오페라.
단어들만 나열했는데, 어렵단 느낌이 확~ 들어온다. 클래식이란 장르를 떠올렸을 때, "교양"이란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어렵고 길고 지루한"이란 수식어도 함께 떠오른다. 고전 음악이 좋다는 건 알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오랫동안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클래식보다는 가사가 있는 음악에 더 자주 노출되어 있던 나에게 클래식을 받아들이는 건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 Anastasiya Petryshak)"라는 곡이었다. 이상하게 이 곡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첼로 독주 버전을 가장 좋아하지만, 협연을 한 버전도 좋아한다. 그 무렵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연구실에서 작업을 할 때면 꼭 클래식 음악을 LP 판으로 들려주시곤 했다. 그 이후로 클래식 음악이 점점 귀에 가까워졌다. 조금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만난 것이다. 긴 세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며, 음악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말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걱정을 했었다. 마에스트로가 말하는 음악을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음악의 깊은 심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자와 세이지라는 한 마에스트로가 느끼고 경험한 음악의 세계였다. 거대한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볼 때,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시대에서 음악이 어떤 위치였는지, 음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들려오는 음악이 어떤지.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지휘자로써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지. 오페라에 도전하게 도니 계기가 무엇인지 등. 한 개인이 경험한 음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비추어 보는 책이었다. 만약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입문서나, 음악 평론서를 기대했다면, 잘 못 골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와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한 마에스트로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는지, 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래서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음악을 전해주길 바라는지"가 담백하게 담겨 있다.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한 책들은 정말 많이 있다. 하지만, 그 클래식 음악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것도 본인의 목소리로 말한 책을 찾아보기는 더 어렵다. 이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다른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표정이나 손놀림으로 길게 여백을 둘지, 짧게 둘지 지시하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꽤 많이 달라져요.

지휘자는 어떻게 하자는 판단을 그때그때 즉석에서 하는 겁니까?

음, 뭐, 그렇죠. 계산해서 한다기보다, 어느 정도 지휘 경험을 쌓다 보면 여백 두는 법을 알게 돼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 게 어떻게 해도 안되는 지휘자가 의외로 있거든. 그런 사람은 아무리 오래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요.

눈빛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물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지휘자는 연주자한테 사랑받죠. 연주자 입장에서도 편하거든.

 

지휘자가 어떤 일을 하고, 일을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듣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 심정을 대변한 말을 한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요. 혼자서 소설 쓰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오케스트라는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이끌어 조율하는 지휘자는  곡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이 각각 연주를 할 때,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곡과 곡 사이에 어떻게 여백들 넣을 줄 알고. 이 여백에 따로 곡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차이를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대신 '음악을 끌고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음악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의 음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이야기하는 단위가 굉장히 작은 부분이어서 좋았다. 어떤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의 몇 번째 악장의 브리지 부분이 아쉬웠다고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정말 세밀한 단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휘자의 눈빛과 손끝에서 다른 음악이 피어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일상을 넘어 삶 속에 깊게 음악과 일치되어 있는 오자와 세이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어떤 한 곡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곡이 만들었을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과정 중에 연주된 한 곡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먼 듯 가까운 듯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대담을 정리하고, 자신과 오자와 세이지의 공통점을 다음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우리 둘 다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는 점이다. 음악과 문학, 영역은 달라도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자기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 일을 통해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잊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상이다.


둘째는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굶주린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더 깊이 추구하고 싶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는 게 일하는 데 있어, 또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모티프다. 오자와 씨의 언동을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의미에서(말하자면) 탐욕스러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납득은 한다.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족하지는 않는다. 좀 더 훌륭한, 좀 더 심오한 것을 할 수 있을 터다 하는 감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시간이며 체력 같은 제약과 싸우며, 이뤄내겠다는 결의가 있다.


셋째는 ...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끈기가 있고, 터프하고, 그리고 고집스럽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닥쳐도, 설령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받는 한이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 원래부터 꾸밈없는 성격에 늘 농담을 입에 달고 살고, 그런 한편으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지만, 그런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매우 확고하다. 일관되고, 흔들림이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밝힌 이 세 가지는 쌓여가는 글의 양과 들어온 클래식 음악에 따라 공감을 할 수도 있고,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다시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베토벤에 대해 또다시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은 혼자서 감상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감상의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전체적으로 오자와 세이지가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단한 작은 질문들이 탄탄하고 촘촘하게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세계를 여는 데 기여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문외한이라고 고백한 뒤, 그의 말과 그가 들려준 음악을 듣는 내내 그가 집중하고 있다는 게 글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말이 겸손한 것이란 걸 오자와 세이지가 확인해준다.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엄청난 양의 추억이 되살아나게 만들고, 아주 정직하게 말이 나오도록 이끌어낸" 그는 훌륭한 기자 혹은, 대담자였다.

 

길게 감상을 밝혔지만, 한마디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독특하고 재미있게 음악을 적은 책이다. 그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읽으면 더 훌륭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말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그가 말한 곡을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버전으로) 들었다. 그 곡과 함께 음악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 클래식 음악의 담장이 조금 더 낮아진 것 같다. 음악과 함께 할 때 더 좋은 책이 바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다.

 

귀와 생각이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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