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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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무조건적 환대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 비록 실패한 구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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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1 루소전집 1
장 자크 루소 지음, 박아르마 옮김 / 책세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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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이 시작되었다. 한 해의 처음 몇 달은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지...2025년 2월의 첫날, 루소의 <고백>을 주문했다. 20년 지기 친구 둘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니 배달이 되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열어 본다. 익히 알다시피 루소의 <고백>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고백록>과 더불어 3대 고백록으로 불린다. '몇 대 ○○'이라는 표현은 좀 우습기는 하지만, 아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의미있는 정보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을 수 있다.


루소의 <고백>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톨스토이의 <고백록>에 비해 가장 인간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초상화로만 전해지지만) 루소의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나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재기 발랄함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어떤 무거운 진지함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 있는 그대로 완전히 자연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한, 앞으로도 유일무이하게 남을 인간의 초상화가 있다."라는 <고백>을 여는 루소의 선언처럼, 이 책은 그 진솔함에 있어서는 가장 앞자리에 놓일 것이다.


무작위로 페이지를 펼쳐 보았는데, 번역도 아주 좋다. 루소가 글을 잘 쓴 것인지 번역자의 번역이 훌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히 잘 읽힌다.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아서 더욱 잘 읽히는 것 같다. 좋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쉽게 잘 읽히는 책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저자에게 무한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물론 나는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글을 쓴 사람이 잘못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 사람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태 자체'가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도저히 쉬운 언어로는 전달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사태도 있는 것이다.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헛소리'로 폄하되는 것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


'나'라는 존재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존재이다. 나는 나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볼 때조차도 나는 나 자신을 속인다. 솔직하게 나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다른 이유는 자기의식이 무한 연쇄를 이루게 되는 데 있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의식을 또 바라보는 나의 의식이 있고, 그 의식을 바라보는 나의 의식이 또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의식의 연쇄에서 최종점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나의 의식에 결코 포착되지 않는 '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나'와 영원히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자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고백>은 우리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아주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백>의 서두를 여는 루소의 아래와 같은 말을 믿고 싶다. 물론 이마저도 고도의 기망일 수 있겠지만.


최후의 심판 나팔이 울리면 언제든지 나는 이 책을 손에 들고 신 앞에 나아갈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이것이 제가 한 행적이고, 제가 한 생각이며 과거의 제 모습입니다. 저는 선과 악을 모두 솔직하게 고했습니다. 나쁜 점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좋은 점이라 해도 전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심판 나팔이 울리면 언제든지 나는 이 책을 손에 들고 신 앞에 나아갈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이것이 제가 한 행적이고, 제가 한 생각이며 과거의 제 모습입니다. 저는 선과 악을 모두 솔직하게 고했습니다. 나쁜 점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좋은 점이라 해도 전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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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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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조카들에게 홍세화 선생의 <생각의 좌표>를 선물했다. 충격적이었던 일은 7명의 조카들이 홍세화 선생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수줍은 성격의 조카 한 명만이 내게 몰래 다가와 "삼촌...혹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똘레랑스 그분 아닌가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을 뿐이다. 홍세화 선생을 모를 수도 있다.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세대 간의 단절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은 작년에 작고하시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10-20대의 청년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특히 조카들은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다들 소위 명문고, 명문대를 다니고 있는데도 홍세화 선생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이 놀라움을 배가시켰다. 홍세화 선생의 메시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던 것일까. 


홍세화 선생은 누구인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전사, 빠리의 택시운전사, 작가, 언론인, 진보신당 대표, 장발장은행장, 자유인, 아웃사이더..."(2024. 4. 20. 한겨레21, 안영춘 기자) 홍세화 선생은 어떤 사람인가. 고종석은 이렇게 평한다. "신념의 일관성에서, 자신의 존재조건에 대한 반성의 철저함과 항구성에서, 말과 행동의 일치에 대한 점검의 부단함에서 그를 앞설 사람을 나는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홍세화의 공부>에서 재인용) 고종석의 평가에 나는 100% 동의한다. 홍세화 선생은 부조리한 세상과 억압적 사회의 모순과 항시 긴장하면서, 부단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지런하였고,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기보다 타인의 말을 잘 듣는 데 더 열심이었던 '소박한 자유인'이었다.


홍세화 선생의 최대 업적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를 전파했다는 것이다. '똘레랑스'란 무엇인가. 필리프 사시에의 똘레랑스에 관한 책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던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보자. “간단하게 줄인다면 ‘관용’보다는 ‘용인’입니다.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기보다 종교나 사상이 달라도 그 ‘차이’ 자체를 다른 그대로 ‘참고 받아들인다’는 정신 자세입니다.” (2010. 2. 1.자 경향신문 기사에서 인용) 그렇다면 똘레랑스 정신은 구체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나타는 것인가. “‘차이를 용인하라’는 말은 억압하고 배제하는 인간들의 정신 자세와 행동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소수자·국가보안법·지역·종교의 앵톨레랑스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입니다. 앵톨레랑스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톨레랑스는 소수자·약자의 권익을 위한 사상적 무기이자 민주주의 성숙의 무기입니다.”(같은 기사에서 인용) 문명국가의 최소조건이라 할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고 있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가 거센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똘레랑스'가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홍세화 선생의 책 중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책이 <생각의 좌표>이다. 이 책의 부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선생은 제도 교육과 미디어에 의해 주입되었다고 본다. 제도 교육과 미디어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주입하는 장치이고,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라는 명제가 타당하다면, 결국 우리 모두는 지배계급이 주입한 이념에 따라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자주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행동이나 의식을 보이는 것이고, 특히 선거 국면에서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투표의 행태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선생은 그래서 '의식화'가 아니라 '탈의식화'를 주문한다. 머릿속이 이미 지배계급의 이념으로 의식화되어 있으니(즉 지배계급에 대한 자발적 복종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으니) 그와 같은 의식에서 우선 벗어나보자는 것이다.


탈의식화를 위해 우선 당장 해야 할 일은 "왜?"라고 묻는 것이다. 상대가 싫어서, 우리 편이 좋아서가 아니고, 상대의 의견이 왜 문제인지, 우리 편의 주장이 왜 타당한지를 물어야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반지성주의'가 문제 되고 있는데, '반지성주의'의 발호는 결국 '"왜?"의 죽음'에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왜?"라는 질문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기부정이고, 이 자기부정을 통해 진보의식은 성숙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일이 아닌,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위한 비교"(137쪽)를 할 수 있게 된다. 주입식 교육에 의해 이미 지배 이념으로 의식화된 머리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이라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뻔해 보이지만, 실천이 어렵다.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적실한 방법이다. 


이 책에서 선생은 자신이 붙들고 고민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안고 문제들이 어디 손쉬운 해결을 허락하던가. 대신 선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과 과제를 던진다.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 서민 대중은 기득권 세력을 선망하고 가진 자들의 언어에 잘 현혹되고 그들을 지지한다. 뻔뻔한 자들의 기득권 체제는 지속되며 사회 안에서 불평등과 고통, 불행, 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우리에게 이 맞섬은 한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때 끝내 마감할 수 없는 과제가 된다."(182-183쪽)

남과 비교하는 일이 아닌,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위한 비교에 머문다면 다수자, 소수자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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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 이브토로 돌아가다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사람의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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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니에르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대어 얄팍한 재미를 보려는 목적으로 나온 책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박하게 평가하기에는 책 내용이 상당히 좋다. 아니에르노 글쓰기의 기원과 비밀을 작가가 직접 얘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이다. 글쓰기는 자기 탐색이다. 자신이 살아 내왔던 시간과 공간, 거쳐왔던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고백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하고 솔직한 해부이다. 좋은 글쓰기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솔직함만으로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종종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포장되는 글은 사실 감정과잉이나 자기 미화로 얼룩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글은 글 쓰는 사람과는 분리되는 형식이고, 객관화된 구성물이다. 자신을 탐색한다는 것은 자신을 만들어낸 사회적, 물적 조건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에서 글은 필연적으로 글 쓰는 이가 처해 있는 혹은 처해 있었던 조건이나 환경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사회적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러 작가가 저마다 균열을 일으킬 때 문제적 현실은 조금씩 변화한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부르디외에 대한 공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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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 세상을 지배하기도 바꾸기도 하는 약속의 세계
김진한 지음 / 지와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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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라딘의 마술 램프와 같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법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답은 헌법에 있다. 헌법 제1조 제2항을 보자. 영화 <변호인>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저 유명한 조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서 국민이 법을 소유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법을 제정하는 입법권,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 법을 해석 및 적용하는 사법권 등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법 또한 당연히 국민이 소유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저 선언적 규정은 사실 아무런 힘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간악하고 흉포한 정치인이 권력을 잡게 되면, 오히려 법은 제 주인을 물어뜯는 괴물이 된다. 법의 이름 아래 국가적 폭력이 자행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가 법치국가원리이다. 법치국가원리가 법을 통해 국민을 지배하는 원리로 잘못 오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법치국가원리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원리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권력의 자의적인 행사와 횡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원리가 바로 법치국가원리인 것이다. 법치국가원리는 제도적으로는 권력분립의 원리로 나타나는데, 권력을 여러 국가기관에 분산시켜 각 기관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방지해야만, 실질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토록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고, 헌법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치국가원리와 권력분립원리를 근본 원리로 하여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박근혜나 윤석열 같은 괴물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 헌법은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헌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일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헌법을 잘 지키는 데에 적합한 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176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에서 청구인인 국회 측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한 변호사는 이 책에서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최후의 보장 장치는 시민"이라고 말한다. "시민이 공동체 논의에 참여하는 것, 토론을 통해 배우는 것, 계속 질문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성공하고,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177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질문을 하여야 하는가. 시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질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의심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우선 어떤 정치인/지도자가 좋은 정치인/지도자인지 물어보자. 국가의 권력을 맡겨도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자. 헌법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권력이고 권력은 선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174쪽). 왜곡된 언론 보도에 속지 말고, 가짜 뉴스에 홀리지 말고, 정치인들의 온갖 선동에 놀아나지 않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출신 지역과 정당만을 보고 투표하지 말고, 정치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 주장이 옳은지, 진정 국민의 삶을 향상할 수 있는 주장인지를 질문하자.


우리는 어떤 정치인이나 그의 의견에 대한 정보를 대체로 언론에서 얻는다. 언론이 왜곡되면 우리가 얻는 정보도 왜곡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을 금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언론이 공동체를 마음대로 요리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181쪽) 그래서 저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규정을 헌법에 두는 것으로 헌법 개정에 대한 제안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독립성 보장, 방송의 자유, 국민의 인격권과 표현과 자유와 직결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성을 잃고 대통령이라는 개인에 종속되어 있고, 이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또한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국가 실현을 위해, 즉 헌법 실현을 위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다. 즉 검찰이 검찰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 봐주기 수사나 편파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당하고 위법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찰이 권력의 편에 붙어 권력의 입맛에 맞게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우리 시민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없이는 결코 검찰 개혁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책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몰라도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대체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그 작동 원리를 몰라도 사용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법은 다르다. 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제아무리 우리가 법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더 나아가 법에 대한 소유권마저 잃을 수 있다.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는 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법이 무엇인지, 법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더 나아가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바탕으로 하여 평이한 언어로 설명한다. 진정 '법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법의 주인을 찾는다는 저자의 부름에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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