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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 세상을 지배하기도 바꾸기도 하는 약속의 세계
김진한 지음 / 지와인 / 2024년 4월
평점 :
법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라딘의 마술 램프와 같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법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답은 헌법에 있다. 헌법 제1조 제2항을 보자. 영화 <변호인>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저 유명한 조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서 국민이 법을 소유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법을 제정하는 입법권,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 법을 해석 및 적용하는 사법권 등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법 또한 당연히 국민이 소유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저 선언적 규정은 사실 아무런 힘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간악하고 흉포한 정치인이 권력을 잡게 되면, 오히려 법은 제 주인을 물어뜯는 괴물이 된다. 법의 이름 아래 국가적 폭력이 자행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가 법치국가원리이다. 법치국가원리가 법을 통해 국민을 지배하는 원리로 잘못 오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법치국가원리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원리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권력의 자의적인 행사와 횡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원리가 바로 법치국가원리인 것이다. 법치국가원리는 제도적으로는 권력분립의 원리로 나타나는데, 권력을 여러 국가기관에 분산시켜 각 기관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방지해야만, 실질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토록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고, 헌법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치국가원리와 권력분립원리를 근본 원리로 하여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박근혜나 윤석열 같은 괴물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 헌법은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헌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일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헌법을 잘 지키는 데에 적합한 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176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에서 청구인인 국회 측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한 변호사는 이 책에서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최후의 보장 장치는 시민"이라고 말한다. "시민이 공동체 논의에 참여하는 것, 토론을 통해 배우는 것, 계속 질문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성공하고,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177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질문을 하여야 하는가. 시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질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의심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우선 어떤 정치인/지도자가 좋은 정치인/지도자인지 물어보자. 국가의 권력을 맡겨도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자. 헌법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권력이고 권력은 선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174쪽). 왜곡된 언론 보도에 속지 말고, 가짜 뉴스에 홀리지 말고, 정치인들의 온갖 선동에 놀아나지 않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출신 지역과 정당만을 보고 투표하지 말고, 정치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 주장이 옳은지, 진정 국민의 삶을 향상할 수 있는 주장인지를 질문하자.
우리는 어떤 정치인이나 그의 의견에 대한 정보를 대체로 언론에서 얻는다. 언론이 왜곡되면 우리가 얻는 정보도 왜곡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을 금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언론이 공동체를 마음대로 요리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181쪽) 그래서 저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규정을 헌법에 두는 것으로 헌법 개정에 대한 제안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독립성 보장, 방송의 자유, 국민의 인격권과 표현과 자유와 직결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성을 잃고 대통령이라는 개인에 종속되어 있고, 이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또한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국가 실현을 위해, 즉 헌법 실현을 위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다. 즉 검찰이 검찰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 봐주기 수사나 편파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당하고 위법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찰이 권력의 편에 붙어 권력의 입맛에 맞게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우리 시민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없이는 결코 검찰 개혁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책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몰라도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대체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그 작동 원리를 몰라도 사용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법은 다르다. 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제아무리 우리가 법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더 나아가 법에 대한 소유권마저 잃을 수 있다.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는 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법이 무엇인지, 법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더 나아가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바탕으로 하여 평이한 언어로 설명한다. 진정 '법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법의 주인을 찾는다는 저자의 부름에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