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나로 하여금 소설가를 꿈꾸게 했던 이청준 바로 그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그 시절에도 느낄 수 있었던 탄탄한 문장과 흥미있는 줄거리, 긴장되는 이야기 전개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했다. 이제 조금 나이를 먹은 탓일까? 이 소설이 문둥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중심에 놓은 단순한 이야기책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문둥이들을 격리시켜 수용해 놓은 곳. 소록도. 이 소록도에 새로운 원장이 부임해 온다. 조백헌. 그는 삶에 지치고 인간에 절망하고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만이 가득한 문둥이들에게 새 삶을 주고자 한다. 오욕의 땅 소록도를 문둥이들의 '천국'으로 바꾸는 것. 소록도 앞 바다를 메워 거대한 간척지로 만들어 문둥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려는 것이다.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내 벽에 부딪친다. 세상에 배신만 당해온 문둥이들은 애당초 조원장의 달콤한 계획을 불신하고 있었다. 정상인인 조원장의 천국건설은 잘 되어봤자 정상인, 즉 '당신들의 천국'일 뿐인 것이다. 그 천국은 결국 문둥이들을 하나의 울타리에 가두어 문둥이의 문둥이됨을 더욱 고착화 시킬 뿐이다.<당신들의 천국>이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은 인간사에 보편적인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확립된 우리사회에서도 여성,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혼혈아 등의 사회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별과 배제라는 비인간적인 시선을 넘어서서 보다 인간적이고 통합된 사회로 가는 길은 어떤 것일까. 작가 이청준은 '믿음'과 '사랑'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믿음과 사랑의 실현은 측은지심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동물적 욕망과 지배욕을 뛰어 넘을 때만이 가능하다. 믿음과 사랑이 만개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가시덤불 우거진 울타리와 두터운 장벽없는 '우리들의 천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