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부의 사랑법
테일러 젠킨스 리드 지음, 이경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뜨거운 여름의 끝, 불길 속에서도 피어나는 가족과 사랑의 의지


단 한 번도 미국 서부 해안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갈 수만 있다면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책이다. 드넓은 해안에서 파생되었을 화려함과 개방감, 젊음으로 넘쳐나는 눈부신 순간들과 그 뒤에 찾아올 듯한 새벽의 잠잠함과 남모를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물론 나는 가본 적이 없으므로 이 모든 것이 로망에 가까운 상상일 뿐이라는 걸 양해해주길 바란다..)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한여름의 말리부, 파도 소리와 석양, 셀럽들이 몰려드는 호화로운 파티, 그러나 그 찬란함 뒤에 복잡하고도 서늘한 감정의 흐름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작품은 말리부의 해안가에서 벌어지는 한 파티에서 시작한다. 뛰어난 서핑 실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모델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녀, 니나는 매년 화려한 파티를 주최하는데, 올해의 파티는 유독 격렬하고 위험하게 흘러간다. 셀럽들로 가득한 파티의 밤은 점점 통제 불가능한 방탕함으로 치닫고, 결국 불길에 휩싸인다. 이 극적인 시작은 독자를 이야기의 정중앙으로 끌어당기고, 24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인 네 남매의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 속의 네 남매는 화려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이지만, 그 유명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단한 과거가 숨어 있다. 일찍이 가족을 버린 아버지와 알코올에 기대는 어머니 아래에서 그들은 현실과 싸우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작품은 네 남매의 현재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의 역사를 보여주며 각자의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안의 진실된 욕망을 찾아 나서는 이가 있다.


독특한 점은 이 소설이 극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로 독자의 시선을 끌면서도, 그 안에 섬세한 심리 묘사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네 남매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무게는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서 마주한 삶의 그림자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책은 삶이 한 번 무너진 후,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사랑의 모양이 엇갈리고,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뒤흔들지만, 결국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이야기다. 우리가 어디서 왔든, 누구에게 상처 받았든, 어떤 이름으로 살아왔든,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위로이자 선언이 되어 다가왔다. 다시 불타오를 말리부에서도 잿더미 사이에서 다시 피어오를 용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_

“가족의 역사는 이야기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보다 앞서 온 사람들에 대해 지어낸 신화다.”

p.41


“가족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가. 니나가 생각했다. 잠시지만 그녀는 이런 역사에서 도망치려고 해봐야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부모의 삶이 우리 안에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만드는 유혹만이 우리 앞에 놓인 유일한 운명이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절대 우리의 핏줄을 흐르는 피를 이길 수 없을지 몰랐다. 아니면. 아니면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유로운 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p.289


“허드는 엄마가 그를 사랑해 주었듯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그 어떤 의심도 느끼지 않도록 매일매일 명확하게.”

p.533


_

2025.07.16

@lilybooks_archi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