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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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경계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일본의 사형 제도에 대해 읽었다. 극악 범죄자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이 책 『13계단』을 읽던 중에 마주친 소식이어서 오묘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님의 대표작인 『13계단』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사형 제도라는 현실의 심연을 거침없이 응시하며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바뀔 수 있는가 하는 질문까지 답하려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수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상해 치사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청년, 미카미 준이치이다. 사회로 복귀한 그는 냉혹한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않지만, 과거의 인연인 퇴임을 앞둔 교도관 난고의 제안으로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 그들은 사형수가 무죄를 주장하며 떠올린 기억, ‘13계단’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사에 나선다.


『13계단』은 교수대까지 이어진 실제 ‘열세 개의 계단’을 소재로, 사형 선고가 내려진 후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열세 개의 계단은 물리적인 구조물을 넘어, 국가의 사형 과정 전체를 상징한다. 소설은 그 과정의 비합리성과 모순, 그리고 인간적 고틍을 차례로 드러내며 과연 응보만으로 세상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가하고 묻는다. 사형수의 공포, 교도관의 트라우마, 무죄일지도 모를 사람의 생명을 끊는다는 결정,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범죄에 대한 대가로는 설명되지 않는 윤리적, 감정적, 사회적 불편함을 야기한다.


작품은 범죄소설 특유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 변화와 도덕적 갈등을 깊이 있게 묘사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죄의 무게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단순히 범죄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다시 반복되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기억을 잃은 사형수, 회복을 꿈꾸는 전과자, 과거의 결정 앞에서 흔들리는 교도관. 이처럼 죄와 벌, 정의와 복수 사이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과 함께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었던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쩌면 더 많은 질문을 떠안게 될 것이다. 사형 제도는 과연 필요한가, 죄를 지은 사람은 영원히 단죄받아야 하는가, 인간은 정말로 갱생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질문에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법의 냉정함 뒤에 있는 인간의 얼굴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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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의 정이란 걸 정말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겁니까?“

pp.84-85


“모두 인간이 한 짓이다. 유아 둘에게 저지른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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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lilybooks_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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