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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복수와 애정이 뒤엉킨 시간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먹먹한 정의
윤고은 작가님의 『밤의 여행자들』 수상을 계기로 알게 되었던 대거상 수상작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워낙 재밌게 읽었던 작품이었던 만큼, 골드대거상을 수상한 『나의 작은 무법자』 또한 긴박감 넘치는 범죄 소설일 거란 기대를 품고 읽었는데, 과연 단순한 범죄 소설은 아니었다. 과거의 죄가 현재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그리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비극 속을 헤쳐갈 수 있는지를 그린 강렬하고도 먹먹한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더치스라는 열세 살의 한 소녀가 있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 스타를 대신해 어린 동생인 로빈을 돌보며 어린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그런 그들의 삶은 빈센트 킹이 삼십 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린다. 과거, 빈센트는 스타의 여동생을 죽인 혐의로 복역했었고, 그렇기에 그의 귀환은 오래된 상처를 다시 헤집는다. 한편, 빈센트와 스타, 그리고 더처 가족과 얽힌 경찰서장 워커는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친구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앞에 예상치 못한 살인 사건이 다시 벌어지면서, 이들은 또다시 고통스러운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된다. 특히, 더치스는 스스로를 ‘무법자’라고 부르며 세상과 맞서는 길을 택하게 된다.
소설은 미국 서부의 황량한 마을과 그 안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또한, 단순한 선과 악이 아닌 삶의 모순과 복잡함을 그려나가며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들을 통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예를 들어, 더치스는 거칠고 냉소적인 소녀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워커는 경찰로서의 책임과 개인적인 감정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은 불완전하고 상처 받은 채 남아있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지키려 애쓴다.
읽는 내내 펼쳐지는 잔혹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용서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정의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계속하여 던지며 법과 도덕, 복수와 용서가 때로는 모호한 경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온전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누구라도 어떤 면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책은 결국 과거로부터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으며 살아가는 것, 즉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에 관해 말한다. 더치스의 휘몰아치는 기나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듯이 과거에 대한 용서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상처 뿐인 과거의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이 그에게 있어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먹먹한 여운과 함께 작은 무법자를 응원해본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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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무법자는 어떤 사람이야?
허튼 수작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어. 아무도 우리를 비웃을 수 없어. 내가 너를 지켜. 우리에겐 같은 피가 흘러.”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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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5
@lilybooks_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