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75
이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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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음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기억하고 애도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1.

“어떻게 이 싸움을 자기 안에 갇힌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그 어떤 예지적인 삶으로 흘러들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애도의 변증법이 풀어야 하는 문제다.”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p.161


2.

이 책은 『고요한 우연』 이후 오랜만에 읽은 문학동네의 청소년 소설이다. 판타지 느낌의 희망 찬 이야기를 품고 있을 듯한 강렬한 표지와 독특한 제목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이 얇은 책 속에는 지금 여기, 크고 작은 재해와 사고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 나아가야 한다고 종용하는 사람들과, 그 무엇도 잊어서는 안된다며 책임 주체를 밝혀내려는 필사적인 사람들 사이에 낀 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소년이 이 책에 등장한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 이후 일 년이 흐른 때, 주변의 온갖 배려와 선의를 가장한 말들로부터 도망치던 연서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연서는 참사에서 같은 반 친구를 잃었고, 그 후 진상 조사와 추모제, 학교와 학부모로부터의 압력과 온라인 상의 혐오로부터 ‘사라지고 싶은’ 한 학생이다. 처음부터 그 존재가 없어서 아무도 빈 자리를 못 느끼도록.


친구 혜민과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야밤의 산책 중에 이상한 일과 맞닥뜨린다. ‘왝왝’하는 소리에 이끌려 테니스장 옆 하수구를 들여다본 순간, 사람의 눈을 가진 어느 존재와 마주친 것이다. 그렇게 연서는 ‘왝왝이’를 만남과 동시에, 주변의 이상함을 느낀다. 잊지 말았어야 할 누군가를 잊은 것만 같은 꺼림칙하면서도 익숙한 기억을 떠올린다. 과연 ‘왝왝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모든 것이 잊혀졌으면 하고 바랐던 연서가 그토록 기억하고 싶었던 그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3.

누구나 참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참사를 겪은 청소년의 상실과 고통에 대해 다룬 이 책은 짧지만 복합적인 감정을 찬찬히 다룬다. 과연 슬픔의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혐오의 폭력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등의 깊은 질문도 던진다. 그러면서 연서와 그 주변 인물들은 싸움을 이어가고,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마음껏 응원하게 된다. 슬픔을 어루만지는 그 작은 모임이 보다 희망적인 세계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살아남음’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상태에 놓인다.*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더해, 크고 작은 상실을 겪은 이들은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인지, 아니면 모두 잊어버리고 없던 일처럼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도 강요 당한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히 말한다. 사라진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동시에 그 기억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고. 기억함으로써 그 누구의 존재도 이 세계에서 지워버리지 않고, 흘러감으로써 삶과 세계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로움과 슬픔을 줄여가며 따뜻한 회복을 전하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에서 보았던 표현 같아요! 하지만 아닐지도 몰라요. 어디서 봤더라, 답답하네요.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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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싫어할 이유는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미움을 동력 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방법이다. 나는 쉬운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다.”

p.50


“누구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상기시켜 주기로 하자. 우리가 처음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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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5

@lilybooks_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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