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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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비트는 다른 우주 속에서 불변하는 인간에 대한 사색과 질문들


무려 ‘켄 리우의 신작’이다. 이외에 이 책을 읽어야 할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전에 한국에서 출간되었던 작가의 단편집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영미권에서도 공식 출간된 작품이다! (『The Hidden Girl and Other Stores』로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아주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을 읽고 싶었고, 마침내 읽게 되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과학적 논리로 무장하면서도 휴머니즘적 감동 또한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미 유명한 켄 리우의 작품의 특징은 이번 단편집에서도 도드라졌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첨예하게 다루어지는 뜨거운 이슈들(총기 난사 범죄, 인터넷 트롤링, 가상현실, 전쟁 난민, 환경 위기, 핵 폐기물 등)과 잊혀져 가는 역사적 설화(「섭은낭전」과 삼국지의 도원결의 등)를 조합해 독특하고도 예리한 SF 서사를 쌓아간다.


표제작인 「은랑전」은 8세기 당나라 대의 「섭은낭전」을 모티브로 삼아 펼쳐지는 SF 소설이다. 암살자로 훈련 받은 어린 소녀는 충성심과 의무, 자신이 믿는 옳은 가치를 위해 싸우게 되는데 (심지어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 상대가 될지라도!), 그 과정에서 그녀의 정체성과 운명에 대한 혼란과 폭로가 이어지게 된다. 이 단편에서는 작가가 역사적 요소를 환상적인 상상력과 어떻게 결합시키는지가 부각되면서도 현재의 삶의 가치들에 대해 재고해보게끔 하는 매력이 있었다.


표제작 외에도 역시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이 많았다. 역사 만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점이 도달 가능한 미래 세계에서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에 작가의 사변적인 시각으로 현대 문제를 탐구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비잔티움 엠퍼시움」에서는 가상 현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도록 허용하는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기술이 어떻게 공감과 사회 정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리고 공감의 본질과 착취의 가능성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등의 윤리적 질문을 내게 남겼다. 또한, 「추모와 기도」에서는 총기 난사로 인해 희생된 딸을 기억하고자 온라인 세계에서 조문을 연 부모에 대한 공격을 묘사하면서 비극과 분노의 반복과 대상화, 그리고 무의미한 폭력 앞에 노출된 인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은랑전』에 수록된 열세 개의 단편은 열세 개의 다른 우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내는 각기 다른 우주는 공감과 성찰, 진실과 탐구라는 공통된 주제로 엮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비범한 상상력과 일상의 사건을 조합하는 작가의 능력은 즐거움을 넘어 깨달음과 감동,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은 전망을 함께 선물해주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솔직하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추신. 영미판 『은랑전』에 없는 몇몇 단편은 다른 단편집에 수록되어 이미 출간되었었네요! 오리지널 단편집도 읽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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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lilybooks_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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