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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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으나, 자신의 삶은 이해할 수 있게 될*


조해진 작가님은 내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최근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 비치된 한 계간지를 읽다가 『빛의 영원』 연재를 만나면서 처음 읽게 되었다. 이전 작품과 연결되는 지점이 간혹 보이는 듯해서 작가의 이전 작품을 찾다가, 넷플릭스 「로기완」의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탈북 청년, 브뤼셀, 르포르타주. 매력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도망치듯, 혹은 홀린 듯 흘러가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하여 이 작품으로 작가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함경도 출신 탈북 청년 L의 여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하나의 플롯과, 그를 따라 무작정 벨기에로 향한 방송 작가 ‘나’의 플롯, 그리고 먼 땅에서 L의 흔적을 찾기 위해 김 작가가 만난 ‘박’의 플롯의 크게 세 가지 줄기가 이어진다. 윤주의 일로 인해 그녀와 재이 모두에게서 도망치듯 벨기에로 떠나온 김 작가는 이니셜 L, ‘로’가 이국 땅에서 겪었던 냉대와 멸시, 외로운 삶을 체험하고 ‘박’이 지닌 죄책감의 무게를 알게 되면서 지난한 일상 속에서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고민하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절망과 상처를 품고 있다. 다른 이들은 짐작하지도, 끝내 이해하지도 못할 깊숙한 내면의 고통을 짊어지고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그리는 현실은 애달프고 암울하다. 그러나 소설은 그 자리에 멈추지 않는다. ‘로’는 ‘박’과 ‘라이카’를 만나 유대하며, ‘김 작가’는 ‘박’을 만나 서로를 거울 삼으며 절망 속에서 고개를 들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내고야 말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절망 속에 갇힌 사람은 저마다의 애환으로 인해 불행하기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하다는 것을 작품은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은 말한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고. 다만, 타인에게 다가가려는 진심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에 가닿게 되어 마침내 다른 이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첨예하고도 끈질긴 사실이 되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한 주관적인 감상평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은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사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을 못 찾을 것 같아 가져오게 되었어요.


p.s. 최근에 읽고 있는 『기억의 기억들』과 질감이 비슷한 작품이어서 더 즐겁게 읽었습니다. 한 인물의 일기에 기록된 자취를 따라간다는 점이 재밌었네요.


p.s. 다음은 아마 소설집 『빛의 호위』를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요. 단편도 궁금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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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p.7


“가장 아픈 진실은 그 모든 것이 다만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다.”

p.74


“—살아남으시오. 

브로커는 이어 말한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보지 않겠소.”

p.104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p.151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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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2024.02.29

@lilybooks_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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