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구병모 작가님 책은 고작 세 번째긴 하지만, 난 작가님의 문체가 정말 좋다. 이맛에 한국문학 읽지, 하는 말이 나오게 하는 유려한 비유와 문체. 추상적 대상을 시각화 하는 문장들이 특히나 마음에 든다.


"그 날 이후로 누구든 자신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눈길은 언제나 일종의 질문 내지는 추궁 같았고, 자신의 손길로 부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창문 같았다."


"호수에 그려진 파문처럼 곤의 마음속에 느릿한 일렁임이 솟아오르다 경사가 급한 계곡물이 흐르듯 좀 더 빠르게 수런거렸다."


소설 내용은 이번에도 역시나 빨려들어가듯 재미있었다. 관련 없는 듯한 장면 전환에서 연결고리가 나올 때의 짜릿함이란.

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식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의 틀 안에서만 자랄 수 있듯 인간도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틀을 아는 것일까.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떼를 쓰거나 외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뼘만큼의 공간을 잘 참아내던" 아이였던 곤. 물에 빠진 이후로 생긴 아가미가 상징하듯, 어떤 환경이든 결국은 적응해내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본능이 강인하게 느껴지면서도 처절하다. 

강하와 곤의 관계는 알듯 말듯 미묘하다. 강하 자신도 곤에 대한 마음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을테다. 일방적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가 너무 미웠지만, 해류가 이를 추측해내는 부분을 읽고 나니 강하는 본인이 가진 결핍을 스스로도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꼭 그 대상이 곤이 아니었더라도.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 양쪽의 세계에 걸쳐진 감정은 서로 교환되거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기껏해야 적정 수준에서의 은폐가 가능할 뿐이에요"


결말을 읽고나면 여운이 아주 길게 남는다. 바다가 햇빛과 만나 은빛으로 반짝이듯 시각적으로는 찬란하면서도 아련한 영화 한 편을 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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