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잘 가 ㅣ 웅진 모두의 그림책 46
고정순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4월

고정순 작가님의 신작 그림책입니다. 겉표지를 펼쳐 보면 안쪽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멋진 포스터가 됩니다. 따로 포스터 굿즈를 만들지 않고 책표지를 활용한 작가님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해요. <잘 가>라는 제목처럼 누군가를, 어떤 생명을 떠나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표지의 그림만으로는 그 대상이 누구일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나온 "모든 생명이 자유롭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림책을 만듭니다." 이 말까지 봐야 작가의 의도가 와닿습니다.

너는 한낮의 볕을 좋아했어. 아침이면 내 귓가에 바람을 후, 불어 주었지.

너를 만나고 알게 되었어.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그림책에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사육장의 퓨마, 동물원의 북극곰, 수족관의 돌고래 등등

퓨마 뽀롱이가 열린 사육장 문을 빠져나간 순간, 겁에 질린 사람들이 총을 쏘았어.

여덟 살 뽀롱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지.

이렇게 동물들은 자신의 고향을 강제로 떠나 낯선 환경에서 자유를 잃고 원치 않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억만이 사랑하는 존재를 영원히 살게 한다는 말이 있지.

외로울 때 어릴 적 자장가를 부르듯 너의 이야기를 기억할게.

반려묘를 떠나 보낸 걸로 추측되는 작가님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의 글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듯 "잘 가".. 그림책의 끝에 도달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련해집니다.

고정순 작가는 키우는 동물을 떠나보내면서 반려동물 뿐만 아니라 우리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을 같이 떠올립니다. 그들의 터전을 짓밟고 자유를 빼앗은 채 좁은 곳에 가둬 두고 낯선 환경에서 강제로 적응시켰던 이들이 있고, 그들을 보러 신나게 찾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결국 동물들은 생을 마감합니다.

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지 않고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다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간만이 절대적으로 강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는 게 어렵습니다.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관련 그림책들이 여러 권 떠오르네요. 에릭 바튀의 <내일의 동물원>, 권정민의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등. 관련 책들을 볼 때마다 항상 딜레마였어요. 제가 키우는 우리 꼬맹이들은 동물원을 참 좋아하거든요. 티비에서,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눈 앞에서 직접 보니 신나서 방방 뛰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우리 인간들이 목줄을 한 채 우리에 갇혀 있고, 동물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요. (권정민,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참고)

중요한 점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란 것입니다. 인간만이 귀한 게 아니라면, 주변의 길고양이도, 아파트 근처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는 비둘기도 모두 귀한 생명이라 여긴다면, <잘 가> 그림책 속의 안타까운 동물들의 사연을 더이상 티비에서 접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봅니다.

이 책은 책과콩나무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저의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