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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람
잉그리드 고돈 그림, 톤 텔레헨 글, 정철우 옮김 / 삐삐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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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나온 아이의 표정은 무표정합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귀엽다, 예쁘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린 잉그리드 고돈 작가, 그리고 그 초상화에 시를 붙인 톤 텔레헨 시인. 그들의 작품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기묘한 느낌이 드는 그림책입니다. ‘나의 바람’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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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잉그리드 고돈의 33개 초상화를 보고 톤 텔레헨이 시를 붙여 만든 작품입니다.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밝은 표정이 없어요. 미간 사이는 넓은 편이고, 색감도 어둡습니다. 아이들의 앙 다문 입술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아요. 이 초상화에는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이들 역시 표정은 즐겁지 않습니다. 이 초상화들을 보고 톤 텔레헨 시인이 인간의 감정을 뽑아냅니다. 신기하게도 이 얼굴들을 보며 마음 속에 간직한 소원들을 풀어냈습니다.
비밀 업무를 맡을 비밀스러운 소년을 구하는 광고를 보게 되면 자신이 지원하겠다는 레너드 초상화의 글을 봅니다. 레너드의 표정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요. 절대로 누구에게도 사소한 것조차 발설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초상화만 봤다면 이렇게까지 의미를 두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톤 텔레헨이 붙인 시를 읽은 뒤 아이의 표정을 보게 되면 그 내용과 같은 표정이 나타나 있는 듯해요. ‘언어가 의미를 규정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화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보며 좌절하려다가 시인의 글을 보며 마음 한켠 편해지는 미술 초보 입문자가 된 기분이에요.
호세의 초상화에는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글이 나옵니다. 허먼 멜빌이 지은 <필경사 바틀비>는 출판사에 따라 번역이 조금씩 다르게 나오지만 주인공 바틀비가 이와 비슷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어떤 표현이든간에 이는 화자가 선택함을 드러내고, 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바틀비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그러한 말을 한 것처럼 톤 텔레헨은 호세의 표정을 보면서 그러한 바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호세의 표정 속에서 그러한 욕망을 찾아낸 것에 감탄스러워요.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그 말을 뱉어내고픈 그의 소원이 언젠가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 그림책에서 나오는 ‘바람(소원)’은 결핍 욕구에서 나옵니다. 삶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지요. 결핍이 가져오는 바람은 마냥 행복하거나 신나지 않고 안타깝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들의 바람에는 즐겁고 반짝이는 희망을 담은 소원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긴 소망이나 슬픔, 절망, 꿈은 숨기고 싶은 내면의 은밀한 감정입니다. 우울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이 비밀들은 희망을 품고 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모로 놀라운 책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드러내는 초상화와 그에 걸맞는 글을 보며 미술관 전시회에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이 책은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저의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