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에게갔었어 #신경숙 #창비 #리뷰어스클럽 #서평단



‘아버지’라고 하면 무겁고 진중한 느낌이 떠오른다. 딸이나 아이들이 보통 ‘아빠’라는 친근한 말을 쓰는데, ‘아버지’라고 호칭을 부르게 되면 어른이 된 것만 같이 편하게 다가가기 어렵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경숙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아버지를 개별자로 생각하는 일에 인색해서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작가의 신작인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아버지’는 어떠한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줄거리


나는 엄마가 병원 입원으로 서울로 가시면서, 몇 년만에 고향인 J시에 홀로 있는 아버지에게 간다. 여동생에게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듣고. 며칠 지내면서 계속 눈물을 보이고, 자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아버지의 행동에 놀라면서 기억속의 아버지의 모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온 과거를 회상한다.
1933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아버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열 네살에 양친을 잃고 어린 누나와 동생과 함께 살며 농사를 짓는 가장이 된다. 6.25 전쟁을 겪어내며 스무살에 중매로 엄마와 혼인한다. 여섯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4.19 혁명의 순간에 함께 서있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마음에 품었던 여인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가기도 하였으나 다시 자신을 찾으러 온 아이와 누이에 의해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 뒤 정부 지원 정책으로 소를 늘려 키우다가 미국 수입개방으로 소값이 폭락하면서 서울로 시위하러 올라가기도 했다.
현재 아버지는 오래도록 수면장애를 겪어왔으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갖고 있고 뇌경색으로 인해 치매가 올 수도 있다는 의사의 이야기도 듣는다. 남은 삶을 정리하며 기억이 날 때 식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남겨달라는 아버지였다.




‘한 남자’가 아닌 ‘아버지’의 삶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62쪽)

한국의 현대사를 겪어낸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삶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역사와 함께 흘러간다는 걸 보여주었던 영화처럼, 이 작품 속의 아버지의 삶도 담담한 필체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 삶이 독자의 마음 속에 들어오며 누르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딸이 봤던 아버지의 모습, 아들이 봤던 아버지의 모습, 아내가 보던 아이들의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과거에 겪었던 하나의 사건도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들이 서로의 관점에서 마치 퍼즐을 짜맞추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사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되었을 때 드러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가 숱하게 봤던 모습들이기도 하지만 때론 낯선 모습이기도 하다.



노년의 아버지, 나이듦에 대하여

“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불행과 대치하며 한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네. 모진 상황들을 견뎌낸, 흔적 말이야...” (322쪽)

“나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 (373쪽)


화자와 주변 인물들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보통 이런 시절의 ‘아버지’라 하면 가부장적이고 권위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온 경우도 많았지만, 소설 속의 아버지는 다정하다. 이는 그가 세상의 두려움을 알고 그것을 견뎌내고 버텨낸 자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버지는 묵묵히 자식들을 키워왔으나, 그의 몸과 마음은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재 노년의 아버지는 야위고 우울한 슬픔을 가지고 있다. 밤마다 기억 속에서 헤매며 잠꼬대로 도망치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실제로 도망치다가 다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전날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전쟁을 겪어 낸 세대’라는 말은 책 속의 한 구절로 읽기만 했을 뿐, 그걸 실감할 일이 없다. 기껏 영화 속에서나 잠깐 느껴볼 뿐이다. 그런데 작품 속 아버지의 고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떠올리게 된다. 이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을 딸인 화자가 알았을 때의 당혹감, 그리고 안타까움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가 어찌해 줄 수 없는 삶의 굴곡들을 지워낼 수 없어서 안고가야 하는 그 고통. 그것을 세상을 지우는 치매로 진행될 수 밖에 없나 하는 슬픔이 먹먹히 전해진다.

“저도 모르게 나도 잘 견뎌낼게, 중얼거려져요. 제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외려 아이가 아버지인 저를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요.” (341쪽)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무겁군. 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막막하여 이렇게 쓰고 있지만... 남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 아닌가.” (392쪽)


소설에서 든든한 아버지의 버팀목 속에서 자랐던 자식들은 장성하여 이제 노년의 부모를 돌보게 된다. 항상 우뚝 서서 그 자리에서 큰 그늘을 한없이 펼쳐줄 줄 알았던 아버지는 이제 점점 왜소해지고 약해진다. 어느 순간 돌봄의 역할이 역전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노년의 아버지는 바로 소설 속의 이런 모습, 이러한 느낌으로 하루하루 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 ...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
- 무섭기만 했시믄 어찌 매일을 살것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갈 힘이 되기도 허고......” (196쪽)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아버지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성에 기대어 한없이 포근한 존재로 항상 곁에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보다는 덜 살갑게 굴어진다. 하지만 지난 날 세상에게 가장 힘세고 키크고 뭐든 다 해내셨던 그 아버지가, 이제 장성한 자식들 앞에서 힘없이 기대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가슴이 아려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오리라 예상하지 못하여 갑자기 기습당한 것 같다. 이 책은 미리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 몰랐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책, 아버지의 어깨를 한번 안아드리게 만들고 싶어지는 책 <아버지에게 갔었어>이다.



이 책은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