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록 목록>⠀-포유류인 내가 그 꽃부리에 코를 묻고 있다가 한 점의 꽃가루로 변신해서 암술대를 타고 씨방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밑씨를 만나, 마침내 '수정'이라는 행위에 성공하고 싶다튼 욕망이 일었던 한여름 밤의 기억!-종과 종 사이의 거리를 재단하는 일이 식물분류학자의 업이라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와 현상들을 구명하는 일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때로는 회의와 절망의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일에서 잠시 벗어나 식물 본연의 모습에 집중한다. (...) 그리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이들 수컷은 겨우내 자신을 품어준 그 꽃에서 태어나 암컷이 부화하기를 기다렸다가 암컷과 교미한 후 오래지 않아 그 꽃 안에서 죽는다. 날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날개도 없다. 천선과나무의 꽃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은 생명체를 들여다보다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다.-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고 저마다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거나 조금씩 차지하면서, 아웅다웅 서로 건강하게 경쟁하며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지킨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내게 숲이 속삭인다. 지구라는 별에서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에 가장 서툰 생물은 아마도 인간일 거라고.⠀식물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식물들에 대한 분류와 명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냥 식물을 바라보고 각 식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식물에 별 관심도 없는 나도 책을 읽으면서는 저런 식물들을 직접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꽃에 알을 낳는 천선과좀벌과 천선과 얘기, 나라가 망한 뒤에 들어왔다고 해서 망초라는 이름이 붙은 개망초 얘기가 가장 인상깊었다.또 마지막 챕터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줬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꾸 후순위로 밀리는 것들이 밀려나다가 사라져버리면 돈이 아무리 많아져도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난다.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