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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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록 목록>⠀

-포유류인 내가 그 꽃부리에 코를 묻고 있다가 한 점의 꽃가루로 변신해서 암술대를 타고 씨방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밑씨를 만나, 마침내 '수정'이라는 행위에 성공하고 싶다튼 욕망이 일었던 한여름 밤의 기억!

-종과 종 사이의 거리를 재단하는 일이 식물분류학자의 업이라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와 현상들을 구명하는 일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때로는 회의와 절망의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일에서 잠시 벗어나 식물 본연의 모습에 집중한다. (...) 그리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들 수컷은 겨우내 자신을 품어준 그 꽃에서 태어나 암컷이 부화하기를 기다렸다가 암컷과 교미한 후 오래지 않아 그 꽃 안에서 죽는다. 날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날개도 없다. 천선과나무의 꽃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은 생명체를 들여다보다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다.

-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고 저마다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거나 조금씩 차지하면서, 아웅다웅 서로 건강하게 경쟁하며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지킨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내게 숲이 속삭인다. 지구라는 별에서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에 가장 서툰 생물은 아마도 인간일 거라고.⠀


식물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식물들에 대한 분류와 명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냥 식물을 바라보고 각 식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식물에 별 관심도 없는 나도 책을 읽으면서는 저런 식물들을 직접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에 알을 낳는 천선과좀벌과 천선과 얘기, 나라가 망한 뒤에 들어왔다고 해서 망초라는 이름이 붙은 개망초 얘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또 마지막 챕터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줬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꾸 후순위로 밀리는 것들이 밀려나다가 사라져버리면 돈이 아무리 많아져도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난다.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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