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다, 드디어 알을 낳다! (양장)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13
줄리 파슈키스 글.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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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닭과 아이의 닭

 

얼마 전 먹거리를 손수 길러서 해 먹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닭에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정을 쏟던 주인이 집을 비운 날, 태풍이 덮쳤다. 그러자 놀란 닭들이 알을 낳지 못했다. 다시 먹이를 주고 보살펴 주자 예전처럼 알을 낳아 주인이 기뻐하며 낳은 알을 가져 갔다. 얼핏보면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었는데도 태풍 속에서 떨던 닭에 대한 애틋한 마음보다는 매일 낳던 알을 낳지 않아 당황하는 모습이 더 부각되는 듯해 왠지 마음이 한켠이 서늘했다. 역시 이름을 붙여 주건 아니건 어른들에게 닭은 그저 매일 알을 낳는 자판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에게 닭은 알을 낳는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와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알 속에서 자신처럼 귀여운 병아리가 깨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엄마 닭과 아기 병아리는 엄마와 자신과 별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이 유난히 병아리를 좋아하고 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줄리 파슈키스의 <꾸다, 드디어 알을 낳다!>는 이런 어른과 아이의 시선이 교차되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왜 낳아할 알은 낳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고 다니는지. 이미 알을 낳는 일과에 익숙해진 닭들이겐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존재로 생각될 뿐이다.

하지만 꾸다에게 알을 낳는 것은 다른 닭들처럼 일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이 보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느낀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자연의 축소판이다. 우리의 아이들 역시 우주의 축소판이고 자연의 일부이듯 말이다.

닭이라고 해서 우리가 먹을 알을 낳는 존재 또는 알을 낳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생각이 아닐까.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이 알을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당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꾸다는 시인과 철학자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자신만의 멋진 알을 낳기 위해선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롭고 부드러운 곡선이 어우러진 일러스트와 화려한 색채감이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국적이면서도 닭이라는 친근한 소재와 주제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을 떠올리는 것도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꾸다는 암탉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말 사랑스러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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