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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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특히 마지막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스민 시는「일 잘하는 사내」라는 다음과 같은 시이다.

다시 태어나면/무엇이 되고 싶은가/젊은 눈망울들/나를 바라보며 물었다/다시 태어나면/일잘하는 사내를 만나/깊고 깊은 샨골에서/농사짓고 살고 싶다/내 대답/돌아가는 길에/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왜 울었을까/(…)

이렇게 묻고 나서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순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울었을 거라고 해석까지 해놓으셨다.

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으니까 다음 세상에하고 싶은 것도 없는 대신 내가 십 년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꼭 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긴 하다. 죽기 전에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그까짓 마당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나 혼자 먹고살 만큼의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세금 걱정도 안 하고 대통령이 누군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살고 싶다. 신역이 고되 몸보신 하고 싶으면 기르던 누렁이라도 잡아먹으며 살다가 어느 날 고요히 땅으로 스미고 싶다.

사집을 덮으면서 나에게 온 생각이다." - P231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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