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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국내에 처음 번역된 '로버트 고다드'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스티븐 킹 님의 인터뷰에서였다. 매년 그 해의 좋은 작품을 뽑는 스티븐 킹은 2008년에 1위로 '로버트 고다드의 모든 작품'을 뽑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들에는 마카로니 한 상자보다 더 비비 꼬인 반전이 들어있고, 모두들 로버트 고다드의 명료한 산문으로 잘 표현된다. 독자는 매우 수준 높은 솜씨로 소설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며, 다음과 같이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여지껏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좋은 작가들이 아직도 많을 테지?"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안 읽냐고요.
그리고 마침 이번에 국내에 이 분의 소설이 출간되게 되어서, 열심히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자마자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편하게 시작한다. 왕년에 잘 나가던 영화배우지만 지금은 그냥 그런 연극 순회공연을 전전하고 있고 부인과도 (자신은 여전히 마음이 있지만) 이혼 위기이고 부인에게는 돈 많은 사업가 남자친구도 있다. 그러다 그냥 부인이 주변에 이상한 남자가 돌아다니는데 혹시 아는 사람인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냥 그 남자를 쫓으러 간다. 그 뿐이었는데 이런 소설이 다 그렇듯이 일은 눈덩이가 언덕 밑으로 굴러가면서 불어나듯 커지고, 속도도 붙고, 그만큼 무거워지면서 통통통 튀어간다.
 
오랜만에 읽는, 현재 시점의, 다른 장르 섞이지 않은 깔끔한 미스터리물이었다. 최근 현대 미스테리물은 대부분 범죄 스릴러 위주라든가, 연애가 과하게 끼어든다든가, 아니면 아예 판타지로 가든가, 혹은 재미가 없든가 해서 잘 손이 안 갔는데, 오랜만에 읽으니 꽤 상쾌했다. 그리고 이 작가의 특징이라지만, 현대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다른 현대 스릴러/미스테리물처럼 거칠은 느낌이 전혀 없이 깔끔하고 매끄러운 문장들이어서 좋았다. (물론 이것은 번역이 꽤 잘 된 것도 한 몫 한다. 'dyeing'에서 'e'를 지워서 'dying'이 된 것을 '염색'에서 '색'을 지워서 '염'이 된 것으로 표현했다든가.) 게다가 정말 머리를 비우고 읽어서 그런가. 그냥 지나갔던 모든 것이 뒤에서 복선이었다, 혹은 반전이었다 등등으로 나타나는데, 아주 중요한 것들은 아니지만 이 깨알같음에 몇 번이고 즐거워해 주었다. 사실 마지막 하루는 없어도 되는데 왜 있을까 하고 읽다가 그 촘촘함에 꽤 즐거웠다.

정말, 적당히 편안한(?) 사건을 흥미진진하면서 깔끔하고 매끈하게, 그러면서도 촘촘하게 풀어나가는 근사한 소설이었다.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머리아프거나 지루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하게 자극적이거나 거칠거나 하지도 않다. 그러면서 흡입력도 있고 속도감도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덕분에 읽는 동안도 시간이 잘 가고 읽고 나서도 불쾌하거나 답답하지 않고 즐겁다. 말 그대로 소설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잘 챙기고 있는 좋은 이야기이다. 스티븐 킹님께서 왜 저렇게 말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앞으로 다른 책들이 출간되기를 기다리게 되는 작가 리스트에 고다드씨도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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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들롱이 나온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 혹은 2000년의 리메이크작 [리플리]의 원작 소설이며,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사실 소설 자체의 원작은 [The Talented Mr.Repley]이고. 국내에는 [태양은 가득히]로 동서문화사에서 발간되어서 이미 읽었었지만 이번에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리플리시리즈 전집이 그책출판사에서 나오기 시작해서 그 시리즈로 새로 다 사서 보기 시작했다. (1-4권 출간 완료. 5권은 발매 예정)

내용은, 영화들에서 어느 정도 영화적으로 변형을 해놓기는 했지만, 알려진 내용과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메레디스라는 듣보잡(케이트 블랑쉐 언니 미안;) 캐러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리메이크 작품이 더 원작에 가깝다. ) 톰 리플리라는, 계산을 잘 하고 남 따라하기를 잘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세금 빼돌려주는 일 등 간단한 잡들만 하고 살다가 대강 면식이 있는 디키라는 애가 지금 유럽에서 계속 놀고 있는데 걔 좀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가서 설득해달라는 디키 아버지의 청을 받고,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탈출할 기회라고 생각한 톰은 신나게 이탈리아로 가서 디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디키에 대해서 미약한 애정과, 동경을 품게 되지만 그로 인해서 받는 것은 좌절감과 열등감. 그리고 제대로 일은 되는 게 없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그 진절머리나는 생활을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싫다는 느낌. 그러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디키 행세를 하고 살기로 하고 디키를 죽인다. 그리고 디키의 매달 집에서 오는 돈과 그가 가진 재산을 가로채기로까지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 중에서 주인공 리플리의 증오, 애정, 초조감, 좌절감, 그리고 미칠 듯한 생각들이 어찌나 건조하면서도 팍팍 와닿던지, 나도 모르게 리플리 편이 되어서 (물론 영화 볼 때도 리플리를 좋아하긴 했다. 오죽했음 그 영화 보고 맷 데이먼이 좋아지더라.) 경찰이 한 번 올 때마다, 디키 아버지나 친구가 올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더라. 분명 착한 캐릭터도 아니고 크게 동정이 가는 캐릭터도 아닌데 막 정이 간다. 하이스미스님하가 애정을 담뿍 갖고 쓴 캐릭터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보니 영화와는 살짝 다른 책 엔딩이 더 맘에 들고, 그간 봐온 하이스미스님의 시니컬함이 더욱 잘 느껴졌다. 한결같이 바짝바짝 긴장하게 하는 진행에다 아름다운 주인공의 심리상태 묘사까지. 그저 훌륭함 그 자체랄까. 처음 봤을 때부터 다시 읽은 최근까지 하이스미스 언니는 한결같이 멋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의 책을 국내 발간된 것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다 읽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새로 나와서 좀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여전히 좀 껄끄러우니 마음에 안 들어서 더욱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위에도 몇 부분 발췌해놓기는 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읽다가 갑자기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으면서 온몸이 다 아파와서 결국 읽다 중간에 책을 좀 덮고 잠을 청해야 했던, 다시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펜을 찾아서 체크를 했던 한 부분을 살짝 따온다.

그것은 옛날부터 항상 진실이고,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에게도, 앞으로 알게 될 사람들에게도 진실이다. 
어떤 사람이 그의 앞에 서 있었고, 장래에도 그의 앞에 서 있겠지. 그런데 그는 언제나 그들을 알지 못했었다고 깨닫는 때가 온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언제나 반드시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그는 그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완전히 융합되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필설로는 나타낼 수 없는 충격에 그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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