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작년, 스티븐 킹의 신간에 대한 외국 기사를 접했다. 원체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 관심있게 읽어보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스티븐 킹의 최초 탐정소설',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 추리물'. 생각해보니 스티븐 킹은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심지어는 SF까지 다루는 작가였지만 탐정소설을 다룬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과연 이 분이 탐정소설을 쓰면 어떨까...하면서 잠시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사실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알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과 스티븐 킹 특유의 사람 심리를 은근히, 혹은 대놓고 묘사하는 스타일의 접점이라고는 약간의 거친 묘사 정도 뿐이었다.

하지만 추리소설계 최고의 상인 에드거 상도 타고, 여기저기서 칭찬 일색인 것을 보면서, 그런 약간의 기우는 기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꽤 빠르게 국내 번역이 되고, (팬심으로 당연히) 나오자마자 바로 손에 넣어 단숨에 읽고 난 후,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지를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은 스티븐 킹의 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인터뷰에서 '탐정소설 플롯 짜기 어렵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는 어떻게 이 짓을 그렇게 많이 해먹었을 수 있냐' 라고 투덜댄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투덜거림이 무색하리만치 스티븐 킹은 탐정소설의 문법을 자기 스타일로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은퇴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전직 경찰과 그 경찰의 미제사건-건물로 훔친 벤츠를 타고 질주해서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인- 사이코패스 용의자가 경찰을 약올리면서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매우 전형적인 탐정소설의 구조 속에 스티븐 킹 특유의 심리 묘사와 빠른 사건 전개가 농밀하게 얽혀있다. 덕분에 읽으면서 숨이 턱턱 막히고, 긴장을 늦출 수가 없고, 특히 후반부로 가면서는 책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막판의 500페이지 가량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분명 이렇게 내용과 이야기와 특히 주인공들의 심리에 동화되어서 같이 초조함과 흥미진진함을 느끼는 것은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들과 비슷하다. 분명 이 것은 '스티븐 킹'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라든가, 사건 진행의 추리 진행 구조 등을 보면, 스티븐 킹이 평소의 글과는 분명 다르게 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여서, 다른 작품과의 이런 차이점을 보는 것도 팬으로서 꽤 흥미로웠다.  뭐랄까, 이전의 물흐르듯 쓴다는 느낌과 다르게, 어느 정도 힘이 팍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런 느낌이 탁탁 튀어나와서 거슬리지 않고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다시금 스티븐 킹이 얼마나 노련한 이야기꾼인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조금 재미없어도, '스티븐 킹 최초의 탐정소설' 타이틀이 가지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팬심을 발휘해서 좋아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밌다. 잘 쓰인 탐정소설이 갖는 기본적인 흥미로움과, 스티븐 킹 소설이 주는 재미가 제대로 어우러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듀마 키' 이후, 이른바 스티븐 킹 후기 장편 소설 중에 최고로 꼽아주고 싶다. 왜 진작부터 안 쓰셨는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보통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하거든?'이라는 말을 하면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스티븐 킹은 무시할 수 없다. 안 써서 그렇지, 쓰면 못 쓰는 장르가 과연 무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