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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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좋았던 점. 책은 속도감있게 읽힙니다. 정보량이 그다지 많지가 않고, 문체가 간결한 편이거든요. 책이 꽤 두꺼운 편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퇴마록>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어서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토착신앙- 그중에서도 뱀 신앙에 관련해서는 퇴마록에도 비슷한 내용의 단편이 실려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 소재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10년 이상 이전에 나온 퇴마록보다도 퇴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요.

본 작에 등장한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를 몇 명 꼽아보겠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차심부름을 하는 묘령의 조수(주인공에게 마음이 있음)"

"야한 옷차림으로 미인계를 사용해 주인공을 유혹하는 방송국 피디"

"남편이 죽은 후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다가 결국 그 남자를 죽게 만든 미망인(덧붙여 미인)"

이처럼 전반적으로 여성캐릭터들은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 주어지는 역할은 대체로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행동하다가 주인공을 유혹해 발목을 잡는 것 밖에 없고요. 위에서 언급된 방송국 피디와 조수는 대체 왜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더군요. 방송국 피디는 귀신을 촬영하기 위해 주인공을 불렀다가, 의식에 실패한 주인공에게 뺨다구까지 맞는데 왜 본인의 무능을 여성에게 화풀이하나 싶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애초에 본인도 촬영에 동의했고, 의식이 실패한 건 주인공이 상황 판단을 잘못한 탓이 더 큰 것 같은데 말이죠. 저 피디는 주인공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촬영도 내팽개친 채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며 본인과는 그다지 상관도 없는 일에 계속 고개를 들이밀던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들러리용 미인 캐릭터가 필요했었던 걸까요.

조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작중에서 조수가 하는 거라곤 방송국 피디처럼 야한 옷차림을 하고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제주도에 따라가서 악령에게 빙의가 되는 일 뿐이었습니다.

침착하고 냉정하며 미녀들의 유혹에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설정을 위해 들러리로서만 존재하는 무수한 여성 캐릭터를 보는 일이 꽤 힘겨웠습니다.

아이러니한건 이 모든 여성 캐릭터들의 눈물겨운 희생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전혀 멋져보이지도- 쿨해보이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주인공은 퇴마사로서 딱히 독보적이거나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앞서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 주제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협조를 청하는 겸손함조차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덕분에 작중에서도 귀신에게 내내 끌려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지도 못하며 결국 귀신과의 마지막 대결에서도 패배하고 맙니다. 

뭐, 그 모든 것이 주인공의 잘못은 아니냐고 하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주인공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리타분한 묘사와 더불어, 작중에서 주요한 수수께끼로 등장하는 귀신의 원한에 대한 설명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4.3 사건이란 소재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루고, 의뢰인이 금녀와 이름이 비슷해서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명도 좀 부족해보였습니다. 귀신이 사실은 금주의 친할머니였다- 라는 반전도 그닥 와닿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내내 귀신에게 엄청난 원한이 있던 것처럼 묘사되어,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질거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냥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라니. 여성의 대상화와 틀에 박힌 묘사라는 저주는 그 무시무시했던 귀신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 본작의 제일 큰 비극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체적으로 사건들의 톱니바퀴들이 잘 맞지 않고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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