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연록흔, 감히 말씀 올리나니 호중설을 국법으로 금해주셨으면 합니다." 빛접은 누동자 두 쌍, 직선으로 닿았다. 그리고 함께 섭슬려 온전히 서로를 그 안에 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단 건가?" 작금의 사조이니 호중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하나 없었다. 현국에도 그와 같은 폐단은 존재했다. "아닙니다. 폐하. 결코 충분히 않습니다. 인간에게서 욕망이란 걸 완벽하게 도려내지 않는 한, 가엾고 서글픈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겁니다. 하오나 발본색원이 불가하다 하여 무위(無爲)한다면, 소신은 그 또한 큰 죄라 믿어 의심히 않습니다." "록흔 너는, 해마다 간도 함께 자라는 모양이군." 가륜이 한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일순, 머리를 치고 들어오는 소리가 있어, 록흔을 식겁하게 했다. 그것은 전음도 아니요, 환청도 아니었다. 안어(眼語), 눈빛이 그대로 읽혀 소리가 되었다. 록흔은 드맑은 눈으로 가륜을 보았다. '뉘에겐가 씹힌 입술로, 그리 서슴없이 굴 텐가"'-157쪽
"폐하, 청원(淸原)에서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무슨 말인지 들을 것 없다, 어서 가라. 마음은 말하건만 록흔은 돌아서지 못했다. "물론이다." "벗의 맹서로." 언은 창이려니, 록흔은 상량하고 첨예한 기운에 제 심장을 찔린 듯 했다. "모든 것은 함께 누리되." "서로 여인만큼은 제하자 했습니다." 가륜의 말을 범산이 이었다. '글렀군.' 록흔은 눈을 조프렸다. 돌아서 가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폐하, 제가 만약 사람을 청하면." 가륜과 범신의 눈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벗끼리의 시선이라기엔 진정 맵차고 야멸쳤다. "주시겠습니까?" 그리 묻는 것과 동시에 범산의 시선이 록흔에게 떨어졌다. 이내, 가륜 역시 날캄한 눈으로 같은 방향을 보았다. "여인이 아니니 가하다?" 가륜이 천천히 발음하는 만큼, 록은은 희게 바랬다. "가령, 그러하다면 말씀입니다." 록흔은 말없이 입술만 베어 물었다. 파랏. 문득 인 바람에 관모의 끈이 날았다. 록흔의 눈귀로 가느다란 녹엽이 사분 스쳐 지났다. "산." "예, 폐하." 둘의 목소리가 바람을 긁었다. 록흔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입술이 더 짙붉어졌다. "저놈 빼고 달라면, 두 말 않겠다." -163쪽
달숲에 숨어, 가만 볼 땐 그저 꿈같은 임이었건만. 달샘에 비쳐 멀리 볼 땐 애틋이 그리기나 했건만. 작금에는 숨이 끊기누나.
그 임 게셔, 바라보니 입술 감물고, 눈 내리떠 하고픈 말 하양 많더라도 나는 그저 슬픈 반편이라 내쉰 숨만 잔약히 끊기네.
-단애(斷愛), 모약월(慕若月)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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