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화폐로 통한다는 말은 취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 주더라도 선물의 가치가 일정한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똑같은 것을 이미 갖고 있더라도 받는 사람이 바로 섭섭해하지 않고, 종교적인 이유나 다른 윤리적인 이유로 예의에 어긋나는 선물이 될 위험도 적으며, 심지어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일정 정도 이상의 가치가 있는 보편적 교환 수단. 일단 화폐의 자격을 얻고 나면 술은 바로 그런 기능을 하게 된다.-8쪽
미세권력연구소는 27층, 비자 면제구역을 갓 벗어난 지역에 있었다. 지하는 처음부터 빈스토크 영토가 아니었고, 1층부터 12층까지는 층 구분이 없는 커다란 정원이었다. 그 위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영화관 같은 상업 시설이 21층까지 이어졌는데 거기까지는 외국인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중간지대이면서 또한 비무장지대였다. 그리고 22층에서 25층까지가 경비실 구역이었는데, 말하자면 빈스토크 육군 이천이백 명 중 이천여 명이 주둔한 국경지대인 동시에 여섯개의 출입국 사무소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30쪽
생명이 생명에게. 살아있는 영혼이 살아있는 영혼에게.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만 있다면.-74쪽
이 주소로 들어가셔서 저를 도와주세요. 사진에 구역을 나눠놨어요. 제가 이미 확인한 칸은 푸른색으로 표시가 돼요. 확인 중인 칸은 녹색일 거에요. 아무 표시도 없는 칸을 골라서 비행기 잔해를 찾아주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한 칸만이라도, 딱 한칸만이라도...-105쪽
밑에 내려가 보니까 진짜 가관이더구만. 그야말로 거대한 노숙자 무리가 끝도 없이 길 위에 펼쳐져 있는 광경이라니. 진짜 끝이 안 보였어. 그렇게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때였어. 바람이 휙 부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는거야. 추웠거든. 진자 얼어 죽을 정도의 추위였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하나 변변한 외투를 걸친 사람도 없었어. 모두가 똑같은 높이에서, 똑같은 바람을 맞으며 달달 떤 거지. 밤새 그렇게 빈스토크만 바라본 거야. 바람이 불 때마가 모두가 한목소리로 비명을 질러대면서 말이야. 그때마다 그때마다 주변국 경찰이 소리를 질러댔어. 조용히 하라는 거였지.-152쪽
우리 코끼리는 요새 아주 온순해졌어. 인도에서 아미타브 구매해 온 사람이 그러는데 원래부터 그렇게 온순한 애였대. 타워크레인으로 321층까지 끌어 올렸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그 양반 아주 기겁을 하더라고. 컨테이너에라도 담아서 바깥이 안 보이게나 해주지 어떻게 그냥 몸통에 로프 매달아서 끌어 올려쌴고 그러더라고. 그 짓을 당하고도 멀쩡할 코끼리가 어디 있냐고 말이야.-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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