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생단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말이야 삼각함수보다도 더 어렵게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이야 소박한 것이외다. 첫째도 민족, 둘째도 민족, 민족을 위해서 힘을 합치자는 것이지요."-73쪽
나는 그 물건을,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이 터지면서 총알이 튀어나가 내가 겨눴던 목표물의 일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고안한, 그리하여 한 생명체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을 중지시키는 것은 물론 그 생명체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소망마저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나의 증오와 적대를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 그 물건을 내려다봤다.-89쪽
내 몸에는 어떠한 소망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겁낸 건 바로 눈물이었다. 늙은 나무에 피는 꽃처럼, 내 마른 몸에서 눈물 같은 게 나올까 봐.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인간으로 볼까 봐. 친절을 베풀고 나를 감싸 안을까 봐. 그리하여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나 같은 놈도,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까 봐. -123쪽
"이정희 선생 억울하게 죽었고, 당일에는 그쪽도 술이 취해서 복수하겠노라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그런 설움 없이 사는 조선사람 없으니, 복수 따위는 다 잊으시오. 이 선생이며 안세훈 선생이며, 다 좋은 사람들이었소. 둘이서 참 보기 좋았지. 대신에 이제 둘 다 이세상 사람 아니니, 그쪽이 경성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정희 선생을 잊지는 말아 주시오. 매일은 아니고, 적어도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달라지면 북간도 쪽을 한번 돌아봐달라는 말이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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