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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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게 기억이 아닐까 싶다.
기억이란 속세의 은혜와 원한을 뛰어넘어 그렇게 저 홀로 오는 것이다. -28쪽

지금도 종종 눈앞에 나타나는 이 흐릿한 환각 속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시간은 투명한 어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이 감춰진 어둠은 지나온 모든 것을 품에 안는다. 우리는 결코 땅에 발을 딛고 사는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논밭, 거리, 강, 집 등은 모두 우리가 시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동안 함께하는 동반자들이다. 시간은 우리를 앞이나 뒤로 밀고 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바꿔 놓기도 한다. -58쪽

동생은 방심하는 사이에 시간의 바깥으로 걸어 나오고 말았다. 한 번 시간에서 벗어나자 녀석은 그대로 그 자리에 고정되어 버렸고, 우리는 시간이 등을 떠미는 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훗날 쑨광밍은 시간이 자기 주위의 사람들과 풍경을 가져가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진실한 장면을 보았다. 산 자가 망자를 땅에 묻고 난 뒤, 망자는 영원히 그 곳에 누워 있지만 산 자는 계속 살아 움직인다. 이런 진실한 장면은 시간이 여전히 현실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주는 암시인 것이다. -59쪽

술을 향한 무한한 사랑은 결국 쑨광차이를 무덤으로 이끌었다. 그날 그는 길에서 술을 마시던 오랜 습관을 바꿔, 시내의 작은 술집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다. 그러고는 곤드레만드레 취해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마을 어귀의 똥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덩이로 떨어질 때 그는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 않고, 그저 한마디를 중얼거렸을 뿐이다.
"밀지 마."-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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