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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 EBS 명의 윤영호 박사가 말하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윤영호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본문 내용을 일부 옮겨 본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하와이에 살며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매튜 킹. 그의 가문은 하와이 왕족의 마지막 왕손 중 하나인 마가렛 공주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 매튜는 그 화려한 혈통의 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선대로부터 15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땅의 유일한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쏠쏠할 텐데, 그렇게 엄청난 면적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면, 가히 남부러울 것 없는 신세일터. 하지만 그 역시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처럼 일에 빠져 사느라 가정에는 소홀했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매튜에게 어느 날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온다. 며칠간 출장을 가있던 사이에 아내 엘리사베스가 모터보트를 타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제 그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운 아내를 돌보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두 딸의 아빠노릇을 하랴, 자기에게 부과된 역할들을 해내느라 동분서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딸 알렉산드라는 매튜에게 청천 벽력같은 사실을 말하고 만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아빠..., 엄마 바람피우고 있었어.”
영화 <디센던트>는 이렇게 아내의 갑작스런 사고로 시작해 어느 평범한 중년 남자와 그 가족이 겪는 우울한 사건을 보여준다. 아내의 사고로 인해 그동안 남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자신의 소홀함을 탓하던 매튜의 심정은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 남자하는 짓이 참 가관이다. 딸아이를 차에 때우고 내연남의 집을 알아보질 않나, 급기야는 두 딸과 큰아이의 남자 친구까지 데리고 아내의 불륜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어찌 보면 요샛말로 참 ‘찌질한’ 남자다. 조숙하다곤 해도 고작 10대 청소년인 큰 딸과 아내의 내연 남을 만나는 아빠라니!
하지만 막상 아내의 내연 남을 찾아가서 매튜가 한일은 그동안 엘리자베스와 나눈 은밀한 관계에 대해서 확인을 한 것뿐이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한방 갈기던가, 아니면 난동을 부리며 불륜남의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매튜가 한 복수라곤 말없이 돌아서다 내연남의 아내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한 게 전부였다. 이 못 말리는 소심 남을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그의 캐릭터야 말로 이 영화를 따뜻하고 뭉클하게 만든다. 조지 클루니가 멋지게 연기 해낸 이 중년 사내의 소심함은 아내의 불륜, 죽음과 같은 주제 속에서도 잔잔한 웃음을 던져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심함에 있었기에 죽음 직전의 아내를 마침내 용서하고 자식들을 감싼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매튜의 심성을 소심함으로 여기기보다는 ‘인생을 포용할 줄 아는 인내와 죽음을 앞둔 아내에 대한 배려’로 상찬해야 한다.
한 인간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 그리고 이어지는 생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담하면서도 코믹한 터치로 그려진<디센던트>.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죽음에 이르기까지 환자와 남겨질 사람들이 나누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결코 급하게 흐르거나 재촉하듯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사람들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흘러 갈 뿐이다.
그 완만한 흐름 속에서 주인공은 결국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고, 딸 알렉산드라는 갈등으로 얽힌 엄마와의 관계를 해소한다.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열 살배기 막내딸 스코티도 슬프지만 꿋꿋하게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엘리자베스와 이별이 다가오기에 앞서 매튜는 파티를 열어 지인들에게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녀와 마지막인사를 나눠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 나서 손님들을 일일이 배웅한 뒤 마당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던 이 남자. 이이를 정말 물렁하다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물렁함이 없었다면 깐깐한 딸아이들에게 엄마 몫까지 대신하는 아빠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담담하게 아내를 용서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매튜는 유약하다고 느껴질 만큼 상황을 인내하며 주변을 배려했다.
그런 미덕이 있었기에 영문도 모른 채 딸의 불행을 사위 탓이라고만 쏘아대던 장인의 독설을 견뎠고, 아내의 내연 남에게 찾아가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 달라는 부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인생에서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는 대로 바라 볼 줄 안다. 주어진 인생에 순응할 줄 아는 매튜의 심성이 결국은 아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그저 흘러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심성이 엄청난 개발이익을 앞세워 조상들의 땅에 거대 리조트를 세우려는 회사에 대해 띁내 매각 취소 결정을 내리게 한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분노를 겉으로 쏟아 내기보다는 안으로 여미던 한 남자.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아내를 보며 흘리던 눈물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다. “안녕, 엘리자베스... 안녕 내 사랑... 나의 친구... 고통... 기쁨... 안녕, 안녕, 안녕...”
어떤 죽음을 먹고 또 다른 생물이 살아가듯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죽음을 흡수하며 계속 이어진다. 그가 남긴 죽음이 불편한 것 이었다면 우리 몸속에 흘러든 삶 또한 불편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 삶이 아름다운 것 이었다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줄 삶 또한 그리 될 것이다.
어떤 모습이었건 우리는 죽은 자들이 남긴 시간과 흔적위에서 새로운 터를 짓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허니, 이제 우리에게 돌아오는 밥상을 정성껏 받아들이며, 미안하지만 잘 먹고 잘살아가도록 하자. 일상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윤영호 박사의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중에서-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