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산하어린이 57
권정생 지음 / 산하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느님이 한 여름에 지구상 한국의 경상도 시골땅 수박 밭으로 아들 예수를 데리고 떨어 지셨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동화입니다. 지금쯤 서울 구경한다고 올라와 어딘가에서 세상구경 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나 보실분들 혹 우리 옆집에 살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세요. 저는 이책을 구입해 손주들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살아라
다이닌 가타기리 지음, 남기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본문을 일부 옮겨 본다.

 

[우주적 생명은 불가사의 하다]

 

 

어떤 학생이 내게 히로시마의 모토마치라는 곳의 팽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나무는 1945년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탄을 맞아 가지도 잎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5년 5월초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무 앞의 표지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원자탄이 이 팽나무까지도 흉물스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 가련한 작은 나무는 삶의 힘과 삶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모토마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나무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모토마치 초등학교 학생회).

 

이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팽나무를 여러해 동안 보호해 왔습니다. 그런데 1982년에 ‘야마노’ 라고 하는 나이 많은 나무 치료전문가가 이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수령이 많은 이름 있는 나무 700여 그루를 만져 보기만하고도 그 나무가 죽었는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야마노 에 의하면 나무들은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나무들은 조건만 맞으면, 언제 까지나 살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팽나무 뿌리 중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한가운데, 큰 뿌리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그 주변의 뿌리는 다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야마노’는 그 나무를 만져 보기만 하고, 곧 나무를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남아있는 뿌리둘레를 깊이파고 영양제를 주입하고 새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그 나무가 틀림없이 싹을 틔울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야마노가 말한 대로 그 나무는 싹을 틔웠습니다. 이 나무의 생명은 불가사의 합니다.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지닌 것은 비단 나무만이 아닙니다.

인간, 바윗돌, 새, 공기, 등등 모든 존재들이 그와 똑같은 보편적 우주적 생명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생명과 죽음 뒤에 있는 위대한 크나큰 상상을 초월하는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각기 다른 것으로 보고 있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던 것을 보고 그것을 죽은 것으로 판단해도 그것은 진짜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속에 생명이 실제로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의 팽나무가 그 좋은 예입니다. 사십년 동안 40년 동안 그것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40년 만에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그 나무는 이미 죽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삶과 죽음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 둘은 지난 40년 동안 함께 작동해 왔습니다. 그것들은 지금도 함께 작동 하고 있습니다.

 

다이닌 가타기리의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아라.’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김재진 지음 / 시와시학사(큰나)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본문 일부를 옮겨본다.

 

[세상에 없는 말들]

 

 

아프리카에서 살다온 분이 마사이족에건 ‘죽다’라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필리핀에 사는 한 부족에게는 ‘싫어하다’ ‘미워하다’ ‘전쟁’ 이라는 말이 아예 없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에스키모인 중에서 ‘우트쿠이누이트 에스키모’ 라 불리는 우트쿠 족은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티베트인들이 ‘자학’이란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를 자학한 나머지 우울증에 걸리거나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 우리 청소년 들을 티베트로 보내면 어떨까 생각하게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에 또 어떤 부족은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그 부족들은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없는 만큼 거짓된 사고방식이나 행동도 하지 않는다합니다.

 

김재진의 ‘이별에 다시 올수 있을까’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 EBS 명의 윤영호 박사가 말하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윤영호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본문 내용을 일부 옮겨 본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하와이에 살며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매튜 킹. 그의 가문은 하와이 왕족의 마지막 왕손 중 하나인 마가렛 공주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 매튜는 그 화려한 혈통의 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선대로부터 15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땅의 유일한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쏠쏠할 텐데, 그렇게 엄청난 면적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면, 가히 남부러울 것 없는 신세일터. 하지만 그 역시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처럼 일에 빠져 사느라 가정에는 소홀했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매튜에게 어느 날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온다. 며칠간 출장을 가있던 사이에 아내 엘리사베스가 모터보트를 타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제 그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운 아내를 돌보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두 딸의 아빠노릇을 하랴, 자기에게 부과된 역할들을 해내느라 동분서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딸 알렉산드라는 매튜에게 청천 벽력같은 사실을 말하고 만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아빠..., 엄마 바람피우고 있었어.”

 

영화 <디센던트>는 이렇게 아내의 갑작스런 사고로 시작해 어느 평범한 중년 남자와 그 가족이 겪는 우울한 사건을 보여준다. 아내의 사고로 인해 그동안 남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자신의 소홀함을 탓하던 매튜의 심정은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 남자하는 짓이 참 가관이다. 딸아이를 차에 때우고 내연남의 집을 알아보질 않나, 급기야는 두 딸과 큰아이의 남자 친구까지 데리고 아내의 불륜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어찌 보면 요샛말로 참 ‘찌질한’ 남자다. 조숙하다곤 해도 고작 10대 청소년인 큰 딸과 아내의 내연 남을 만나는 아빠라니!

 

하지만 막상 아내의 내연 남을 찾아가서 매튜가 한일은 그동안 엘리자베스와 나눈 은밀한 관계에 대해서 확인을 한 것뿐이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한방 갈기던가, 아니면 난동을 부리며 불륜남의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매튜가 한 복수라곤 말없이 돌아서다 내연남의 아내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한 게 전부였다. 이 못 말리는 소심 남을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그의 캐릭터야 말로 이 영화를 따뜻하고 뭉클하게 만든다. 조지 클루니가 멋지게 연기 해낸 이 중년 사내의 소심함은 아내의 불륜, 죽음과 같은 주제 속에서도 잔잔한 웃음을 던져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심함에 있었기에 죽음 직전의 아내를 마침내 용서하고 자식들을 감싼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매튜의 심성을 소심함으로 여기기보다는 ‘인생을 포용할 줄 아는 인내와 죽음을 앞둔 아내에 대한 배려’로 상찬해야 한다.

 

한 인간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 그리고 이어지는 생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담하면서도 코믹한 터치로 그려진<디센던트>.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죽음에 이르기까지 환자와 남겨질 사람들이 나누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결코 급하게 흐르거나 재촉하듯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사람들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흘러 갈 뿐이다.

 

그 완만한 흐름 속에서 주인공은 결국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고, 딸 알렉산드라는 갈등으로 얽힌 엄마와의 관계를 해소한다.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열 살배기 막내딸 스코티도 슬프지만 꿋꿋하게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엘리자베스와 이별이 다가오기에 앞서 매튜는 파티를 열어 지인들에게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녀와 마지막인사를 나눠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 나서 손님들을 일일이 배웅한 뒤 마당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던 이 남자. 이이를 정말 물렁하다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물렁함이 없었다면 깐깐한 딸아이들에게 엄마 몫까지 대신하는 아빠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담담하게 아내를 용서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매튜는 유약하다고 느껴질 만큼 상황을 인내하며 주변을 배려했다.

 

그런 미덕이 있었기에 영문도 모른 채 딸의 불행을 사위 탓이라고만 쏘아대던 장인의 독설을 견뎠고, 아내의 내연 남에게 찾아가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 달라는 부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인생에서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는 대로 바라 볼 줄 안다. 주어진 인생에 순응할 줄 아는 매튜의 심성이 결국은 아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그저 흘러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심성이 엄청난 개발이익을 앞세워 조상들의 땅에 거대 리조트를 세우려는 회사에 대해 띁내 매각 취소 결정을 내리게 한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분노를 겉으로 쏟아 내기보다는 안으로 여미던 한 남자.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아내를 보며 흘리던 눈물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다. “안녕, 엘리자베스... 안녕 내 사랑... 나의 친구... 고통... 기쁨... 안녕, 안녕, 안녕...”

 

어떤 죽음을 먹고 또 다른 생물이 살아가듯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죽음을 흡수하며 계속 이어진다. 그가 남긴 죽음이 불편한 것 이었다면 우리 몸속에 흘러든 삶 또한 불편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 삶이 아름다운 것 이었다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줄 삶 또한 그리 될 것이다.

 

어떤 모습이었건 우리는 죽은 자들이 남긴 시간과 흔적위에서 새로운 터를 짓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허니, 이제 우리에게 돌아오는 밥상을 정성껏 받아들이며, 미안하지만 잘 먹고 잘살아가도록 하자. 일상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윤영호 박사의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중에서-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있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 EBS 명의 윤영호 박사가 말하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윤영호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한겨울 방콕하고 책 읽기를 하고있다.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 입니다˝. 서울대병원 윤영호 박사님의 책이다. 책 내용이 충실하고 읽는이의 감동을 드러낸다. 놓치고 살았던것들도 새삼 느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