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고통> 6장 나르시시즘적 ‘도덕’

요컨대 나르시시즘적 ‘도덕‘을 이루는 모든 것이 자기 정체화에서 하나로 묶인다. 자신의 사회성에 대한 부정, 자아의 무제한적 자기 정립, 보편 범주의 거부. 그리고 동시에 그 귀결인 모순,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에 동반하는 사회적 인정의 필요성까지.

280-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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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에서 벗어나 이상을 향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억압적 금지가 아니라 요구하는 이상이 존재한다. 규칙이 도달 불가능한 이상을 말하자면 번역한다고 할 때,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상을 향한 욕망을 규칙을 향한 욕망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오히려 도달 불가능한 이상을 충족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시다.”는 말은 욕망을 금지하는 행위가 갑자기 어떻게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충족하길 원하는 자아이상이 규칙과 금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했다는 것, 거꾸로는 자아이상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아가 규칙과 금지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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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스로 부과하거나 수용하는 이 규칙은 어쨌거나 보편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규칙이며 오직 그러한 규칙으로만 작용한다.

초자아에서 자아이상으로의 이동의 결과는 법에서 윤리(규칙)으로의 이동. 초자아로부터의 해방일까? 고대 그리스에서 자기향상의 윤리(생활규칙)이 자기 자신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절제와 금욕이라는 자기 부정을 통해 윤리를 수행한다. 이 대조에서 전자가 더 자유롭고, 진보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오늘날 개인주의의 강화는 전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책은 자아이상으로의 이동이 나타났다는 것을 이미 전제로 삼으면서 논거를 진행하고, 때문에 오늘날 자기 배려는 자기 해방 뿐만 아니라 복종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개인은 자아이상에 복종되는 상태가 심화되어서 자유를 더욱 잃었다고 진단하는 것 같다. 즉, 고대 그리스와 근대 초기의 자기 수영과 현대의 자기 수영을 비교하면서 현대의 그것이 나르시시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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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집단은 다양한 변종으로 존재한다. 파시즘적 지도자부터 프로이트가 스케치하는 지도자까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와 그 신봉자들이 있고, 바로 스타와 그 팬들이 있다. 후자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관계다. 207p

자기 홍보(?)를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 성공. 자신이 노력해서 타인의 관심을 얻는 것은 실패 위험이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자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자신의 자아이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아이상을 타인에게 투여하는 것. 외주화 하는 것.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신을 투영한,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존재를 사랑하며 나르시시즘 만족을 얻는다. 그것이 지도자와 집단의 관계이고, 오늘날에는 지도자의 정치사회적 권위가 해체됨에 따라 대중스타와 팬의 관계가 우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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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아의 힘들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제지하기 위해 또 덧붙는 것이 있다. 성공이라는 나르시시즘의 목발은 약속일 뿐 아니라 위협이기도 하다. 위협이란 성공의 부재다. 다시 말해 실패다. 나르시시즘적 인정과 경쟁이 서로 교차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89p

나르시시즘적 성공을 위해서 개인들이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더라도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나르시시즘적 성공이란 기본적으로 전방위적 경쟁이라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르시시즘적 사회는 상호간의 경쟁으로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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