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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에 대해서 한번 정도는 생각해볼 것입니다. 길리아드(길리앗)란 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지명이라고 책에는 소개됩니다. 아프거나 다친사람을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는 발삼 나무의 서식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길리아드'라는 이름은 정신적, 육체적 온점함에 대한 소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정신적, 육체적의 온전함이라 인간이라면 원하는 모두 원하는 희망사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이를 들면 정신적으로 성숙이 더해지지만 어느덧 육체는 약해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둘이 모두 온전하게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공자의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처럼 나이에 따라 인생의 경륜이 생기고 정신적 성숙이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육체적 온전함의 대한 인간의 생각은 영원한 숙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입니다. 한 늙은 목사가 자신의 아들이 청년으로 성장하게 될 때까지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위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써내려간다는 허구을 바탕으로 설정된 책입니다.
편지글로 된 소설은 어릴 적에 읽었던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속에 드러나는 주디의 생기발람함이 서간문의 형식으로 잘 드러납니다. 간간히 그려진 주디의 그림 또한 그녀의 생활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편지글로 된 소설을 읽는 이들 중에 평소에 독서량이 부족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지루하다는 생각을 갖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각각의 편지들이 날짜별로 연이어 이어지지 않고 며칠 혹은 몇 달의 터울을 두고 쓰여지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비는 기간을 내용을 읽는 이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글이 보급되면서 쓰여지기 시작한 일상적인 체험이나 느낌을 담은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이 들어나는 내간체 형식의 편지글 보면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글들을 보면서 편지만큼 글을 쓰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드러내기 쉬운 글 형식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영복씨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쓴 <감옥으로부터 사색>도 있기는 하지만 특히 요즘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글이 눈에 많이 띱니다. 예전에 읽은 김대중씨 <옥중서신>부터해서 우연히 읽은 정약용이 아들에게 근검 절약의 생활에 대한 조언의 내용을 쓴 편지 그리고 최근에 읽은 공병호씨의 <초코렛>에서의 '아들에게 주는 말' 등 여러 책을 통해 부자지간의 정을 담긴 글들을 다양하게 읽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길리아드>라는 책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길리아드는 편지글의 형식을 빌려 마치 아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쓰여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가지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편지글의 형식인 서두. 본문, 결미의 틀에서 벗어났습니다. 서두와 결미를 생략한 본문에 충실한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본문에 충실한 그러니까 편지를 쓰는 직접적인 목적에 중점을 둔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상이라도 서두에 쓴 날짜나 그 날의 날씨 등이나 혹은 결미 부분의 서명 부분에 '너를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든지..아니면 너를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 등등 편지쓴 날짜의 쓴 사람의 심정을 간략하게 적어주었으면 나중에 편지를 읽는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친밀감을 좀 더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편지를 통한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좀 더 되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의나 격식을 갖춘 편지는 아니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글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편지에서 날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편지에 쓰여진 날짜와 시간을 기입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짜와 시간을 쓰는 것을 통해 비록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지만 편지를 읽는 이와 쓴 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읽은 이에게 날짜나 쓴 시간 등과 그날의 날씨를 통해 편지 쓴 이의 정서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지쓴 이가 나에게 편지를 쓴 날짜와 그 시간대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지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연관지어 소설을 전개시킨다는 점도 특징이 됩니다. 남북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흑백갈등이 치열하던 캔사스주에서 노예해방에 투신한 현실주의자인 존 제임스 목사의 할아버지와 평화주의자적인 특성을 가진 그의 아버지와의 첨예한 갈등과 함께 그들의 갈등을 목격하며 자란 형이 무신론자가 되어 아버지와 대립하게 되는 등의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가족간의 사상, 종교관, 가치관의 차이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사실적으로 다루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한 가족의 삶을 통해 당대의 사회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족사 소설의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자신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살 수 없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식과 함께 할 수 없는 늙은 아버지의 슬픈 심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읽는 이를 심금을 울리면서 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라는 직업에서 드러나는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그와 관련된 구절에 대한 적절한 언급과 종교를 통한 정신적 성숙함을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 책 속 좋은 구절...
* 17p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야고보서 3:5-6)
* 111p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주님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기를.
* 254p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 (아가 5: 8)
* 301p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기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