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책 소개글에 나온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소설'이라는 말처럼 정말 한번 읽기 시작하니까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가족들이 불러도 대답하기 싫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책인 것 같다. 최근에 처음으로 알게 된 쑤퉁이라는 작가는 독자를 그가 만든 허구의 세계로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몇 개월 동안 읽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에서 만난 수많은 작가 중에 가장 뛰어난 글솜씨를 가진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다. 난 비교적 작가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쑤퉁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다. 아마도 난 그의 소설책에 완전히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책이다. 처음에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농촌소설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내가 짐작했던 농촌소설은 아니고 쌀 가게를 운영하는 집안의 사람들의 가족사와 관련된 가족사소설로 분류하면 좋을 듯 싶다.

   소설은 읽으며 김동인의 소설 '감자'가 떠올랐다. 둘 다  환경 결정론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위에 제시된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 있냐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아주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이라고 말하면 좋을 듯 싶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을 전혀 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름이 돋도록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제시한 또 하나의 세계 속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현실은 실제 우리가 사는 세계보다 더 리얼리티를 띠고 있다.

   책 속에는 쌀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쌀가게 사장 그리고 그의 2명의 딸과 그녀들의 남편 우룽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간에 일어나는 갈등과 시련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들 각각이 그려내는 삶은 너무나 불행하다. 가족간에 서로 맹렬하게 미워하고 증오하며 삶을 계속 이어간다. 그리고 그 불행한 삶 속에서 또 다른 가족구성원들은 생겨나고 그리고 또 비참하게 죽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 쑤퉁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만들어낸 허상을 떨쳐내고 '이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다'라는 것을 독자에게 알리고자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언제나 모든 일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소설 속에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해피엔딩 결말은 어디까지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의 공간이며 실제 세계와는 괴리감이 존재하는 인간들이 꿈꾸는 허구 속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다.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남자의 불행한 삶에 주목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의 젊은 시절부터 그가 비참하게 죽기까지 삶이 이 소설에서 중심 줄기를 이루며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아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점점 잔혹하게 변해가는 우룽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순박했던 한 인간이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나 악하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꿈꾸는 데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 누가 자신의 삶이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고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으며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해서 그 불행의 고리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소설 속 우룽이 고아로 태어나고 싶어나서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가 살던 고향이 수확을 앞두고 갑자기 홍수가 나서 식량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고 그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거지같은 처지로 도시로 흘러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환경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우리의  삶은 불행해지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다. 알 수 없는 인생의 여러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향해 끝없는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지켜줄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자신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밟을수록 강해지는 잡초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강인한 의지를 갖는다면 우리를 시련에 빠지게 하는 불행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빗겨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 주어진 삶 속에서 우리는 즐거움의 요소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희망과 함께 그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꿈을 꾸어야한다. 또한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단련시키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룽과 그의 주변의 인물들처럼 자신의 삶을 불행 속으로 밀어넣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가슴 속 깊은 공간에 꿈틀대는 꿈을 잃지 않는 한 결코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이 선할수록 그 꿈은 더욱 더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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