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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촉촉한 눈빛을 가진 작가 쑤퉁의 소설이다. 우수에 젖은 눈이라고 표현하면 더욱 적절한 듯 싶다. 사람의 눈빛에 감정이 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만든 작가가 쓴 책이다. 잘 생긴 작가이다. 작가를 외모를 두고 판단하는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퍽이나 핸썸한 얼굴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작가 중에 비록 흑백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호남형의 황순원, 곱상한 외모의 윤동주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서 '글도 잘 쓰고 외모 또한 완벽하구나' 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는데 쑤퉁이라는 중국 작가 또한 외모와 글 솜씨는 모두 뛰어난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어진다. 로랭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품 손동작과 비슷하게 얼굴을 괴고 있는 작가사진이 마음에 든다.
개성있는 캐릭터. 생동감 넘치는 묘사.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등이 가득한 쑤퉁의 작품은 여러번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본 작품으로는 장이모가 감독하고 중국 대표 배우 공리가 주연 '홍등'이라는 영화이다. 아마도 그 영화를 본 것은 중학교 시절이였을 것이다. 일요일에 방영하는 명화극장 시간에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들을 순위를 정해서 해 준적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홍등'을 보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이혼지침서>에는 쑤퉁의 작품 '처첩성군, 이혼지침서, 등불 세개' 이렇게 세 작품이 담겨져 있는데 '처첩성군'이 영화 '홍등'의 원작이다. 처첩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여인들의 고통과 갈등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고전 소설 <사씨남정기>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서 읽어봐도 좋을 듯 싶다. 축첩제도가 한 인간(여성)의 심리를 얼마나 황폐화 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여성들의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일부일처제도를 실행되는 시대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책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쁘다. 영화와 책 둘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일은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책과 영화의 경우 서로 다른 매체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색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품의 경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퇴마록>의 경우 원작에 비해 영화의 호응도는 좋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질 경우 보통 독자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작이 뛰어난 작품일 수록 영화로 만들어질 때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원작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 어떤 감독의 손에 거쳐서 만들어지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의 차이도 크고 각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고르고 선정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처첩성군>이나 <홍등>의 경우는 독자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속에서 제시된 여인들의 미묘한 심리를 영화 속에서 실력있는 감독 장이모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를 통해 적절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여성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여성을 서로 적이 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바로 남성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만드는 작품이다. 남성을 두고 벌이는 목숨을 건 여인들간 사투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한 남자를 두고 여성들간 다툼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질투와 반목을 통해 드러나는 잘못된 사회제도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세심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작가의 실력이 부러울 뿐이다. 시점 선택이나 내용 전개면 어느 것 하나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다. 그리고 결말처리 부분도 마음에 든다. 주인공이 불행한 삶과는 전혀 상관 없이 여전히 남편은 5번째 부인을 들이면서 끝나는 것을 통해 개인의 삶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축첩제도 속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는 전혀없이 단지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이 어린 첩을 들이는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 사회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의 삶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쑹렌의 불행은 그 시대의 살아가는 여성의 불행한 삶을 드러내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그녀 한 사람으로 국한된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당시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고 견디어야 하는 고통인 것이다. 쑤퉁이라는 남성 작가를 통해 당시의 여성의 비극적인 삶이 생생하게 재생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홍등>을 보고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그 감동을 책으로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