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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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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의 독서량이 처절하게 줄어들면서도 지적 허영심, 지적 호기심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엄청나게 만들어지는 지식과 교양서적. 그리고 간단한 전공 지식이 함유된 전문 지식서까지. 그리고 이런 책들은 또 절대로 어렵지 않고 짧으며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양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형태도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보통 서양철학이나 인문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정민 선생님의 『습정』은 나에게 좀 과감한 주제로 선택되었다고 생각됐다. 바로 사자성어다. 외래어와 외국어가 판치는 현대에 사자성어는 어쩌면 조금 낡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정민 선생님의 특유의 깊고 세세한 내용으로 사자성어에 대해 짧은 담화를 하고 있다. 어원은 어떻게 되는지, 누가 썼는지, 무슨 뜻인지, 언제 사용되는지 등 선생님만의 문체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길고 지루하다고 읽기 전에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한 사자성어 당 2~3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사자성어에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하루에 한 사자성어씩 마스터하면 어떨까? 어차피 한 페이지씩 뜯어 먹을 수 있는 책이다. 바쁜 요즘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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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
프리타지.크리슈나지 지음, 추미란 옮김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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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성공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2000년대 초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너무 성공을 위해 자신을 남이 정한 레일 위에 올려놓고 달린 까닭일까, 10년 뒤 우리는 ‘자신’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돌렸다. 내가 진정 제대로 사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이제 새로운 담론이 시작되었다. ‘나’에게도 집중하고 ‘성공’에도 집중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에 딱 알맞게 나온 책이 있으니, 바로 『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이다.

 

이 책은 인도에서 의식 변형 명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오앤오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리더인 프리타지와 크리슈나지 부부의 ‘아름다운 상태’로 가기 위한 자기계발서다. 앞서 이 부부의 이력을 통해 이 책이 주로 이야기하고 전개하는 방식은 ‘명상’이다. 대게 내용은 주제와 함께 이론을 설명하고 아카데미 회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물론 이름이나 에피소드는 조금 변형되어 나온다)나 부부의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전개 방식에서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준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독자에게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나도 모르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읽게 되어서 더 집중이 잘 되었다.

 

주제는 크게 ‘아름다운 상태에서 계속 머무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상태는 괴로운 상태와 아름다운 상태로 나뉘며 명상과 자기 훈련을 통해 괴로운 상태에서 아름다운 상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머무는지 알려준다. 이러한 부분에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생생해 독자인 나에게 공감과 감동을 일으킨다. 특히 1장에서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유년 시절 받은 상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 우리는 때때로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분노나 상처를 어리석은 것으로 혹은 현재의 삶과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독립적이고 강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착하는 자아 이미지 혹은 보기 좋은 허울을 잠시 벗어던지면 진정한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우리 의식에 남긴 진정한 파장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감정적 경험을 현재 괴로운 의식 상태에서 그대로 되풀이해왔다는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진실을 용기 있게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58쪽)

 

이런 식으로 적절한 에피소드와 함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굉장히 신뢰가 가고 나의 문제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나타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찾는다. 스마트폰, 드라마, 영화, 예능 혹은 누군가와의 만남, 술 등이 그렇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들은 나 자신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도 상당히 많다. 이 책에서도 ‘설마’하는 내용이 분명히 존재한다. 갑자기 내적 평안을 찾았더니 안 풀렸던 문제가 해결되고 성공하는 식의 스토리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편적인 스토리에 휘둘려 이 책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의 일은 이 책을 좀 더 맛있게 하는 양념에 불과하다. 진정한 가치는 명상과 호흡을 통해 돌아보는 내면 여행이다. 많은 독자가 그 내면 여행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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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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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Sorry to disrupt the peace’이라는 뜻은 중의적인 의미를 띈다. 정말로 미안해서 쓰거나 혹은 약 올릴 때, 비아냥댈 때 쓰이거나. 주인공 헬렌 모런은 이 문장이 인간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헬렌의 의도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 보려고, 혹은 자신의 외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를 별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런 그녀가 자살한 남동생의 소식을 듣고 그 전말을 파헤치고자 한다.

미국 밀워키에서 살았던 한국인 입양아 헬렌 모런은 성인이 되고 그곳을 떠나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문제아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상담사로 일하게 되는데, 맡은 일에 열심히 해, ‘믿음직 언니’라는 별명이 있다.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갑작스러운 감사가 진행되려고 할 때, 제프 숙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다. 자신과 같은 한국 출신의 입양아 남동생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헬렌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과 충격을 받고, 이내 오랜 시간 떠나있던 밀워키로 다시 가,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밀워키로 돌아가고 양부모님과 만났으나 그들은 그녀를 환대하기는커녕 당혹스러워하며 껄끄러워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헬렌은 오랜 시간 그녀가 잊고 살았던 과거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헬렌의 입양아 남동생은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가서 남동생이 일기처럼 쓴 기록이 있는데, 거기서도 ‘X, 모런’이라고 언급될 뿐, 책에서는 ‘입양아 남동생’, ‘녀석’ 등으로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익명은 그가 어쩌면 너무 소수여서 혹은 다수를 지칭하는 기호적 의미 보다, ‘내가 될 수도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편이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렸으며 이 폭력은 주먹질보다 이따금 더 폭력적인 ‘상처 나지 않는’ 폭력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풀리지 않는 삶의 허무함에서 자신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내 고민하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에 반해, 헬렌은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을 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결핍’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 그녀 역시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 속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와 애정에 대해 방황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열렬히 쫓아가 보기도 하고, 또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궁극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애정이 이따금 그녀를 파멸로 몰기도 했고 혹은 누군가 그녀를 시기해서 아슬아슬하게 파멸까지 밀어 넣었다. 남동생과 함께 입양아기에 겪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 두 남매에게 짙게 남아있었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밑바탕에 있었으나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둘은 크게 달랐던 것이다.

패티 유미 작가 역시 한국인 입양아고, 동생이 실제로 자살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과 일치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게 정말 옳다. 그녀는 입양아로서 갖는 어떤 차별이나 고난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입양아였기에 그녀가 가졌던 끝없는 결핍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소설로 썼던 것이다. 부수적인 요인이었던 양부모의 폭력이나 가톨릭적 행위는 어쩌면 주인공 남매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요소였을지 모른다.

작품 속 헬렌은 장례식을 포함한 3일 동안 자신의 행보를 독자들에게 기이하게 보여준다. 갑자기 과거로 갔다가 독백을 하고, 때론 현재의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대화 인용구가 없어서 더 헷갈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알쏭달쏭한 플롯이 오히려 헬렌에게 뭐가 채워지지 않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분명 들리는 거리에서 말하고 대답하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거나 혹은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도 제대로 된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녀는 그것을 가족들로부터 경험했고 이후 그 결핍은 ‘내가 믿음직 언니’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동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은 두 남매의 처절한 애정 결핍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그것을 해소했다. 앞으로 헬렌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헬렌과 같은 사람들에게 ‘믿음직 언니’가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발버둥 치는데. 나는 헬렌에 가까운가 그 동생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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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ㅣ 1일 1페이지 시리즈
데이비드 키더.노아 D. 오펜하임 지음, 허성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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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멍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였다. 유명한 교양 서적을 사 봤지만, 처음부터 다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또 유투브가 잘 되어 있지만, 5분 넘어가는 순간 지루한 건 매한 가지고, 또 내가 원하는 주제나 혹은 다양하게 알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클릭과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클릭 몇 번이야 쉽지만, 정리나 내용이 의심가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위즈덤 하우스에서 야심차게(?) 내 놓은 이 교양서는 다른 교양서와 달랐다. 역사, 문학, 미술, 과학, 음악, 철학, 종교에 이르는 일곱 분야의 지식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1년 365일 동안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날짜에 맞춰 읽는 것도 혹은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골라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정보가 출처인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인터넷의 정보와 달리 이 책은 저자부터 독자에게 신뢰를 주고 있었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이니, 더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종교와 문학 파트에 놀랐는데, 특성상 긴 서사가 필요하거나 간단하게 소개할 수 없을 텐데도 간단하면서 명확하게 소개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러한 도서가 많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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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범죄와 수사, 재판 이야기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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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바로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이 문구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이 명대사의 내용을 전제하에 ‘죽음’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인간은 총 2번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물리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이다. 물리적 죽음은 우리가 아는 흔히 자연사, 타살, 자살 등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죽음은 대상이 살아있던 죽어있던 간접적인 살인행위로 그 대상을 죽이는 것이다. 예시로 타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나 악플, 왕따 등이 그렇다. 이 모든 건 물리적으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지만(될 수도 있다), 정신적인 고통이 몇 배가 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대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로도 정신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

다소 긴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했으나 이렇게 죽음을 진지하게 고찰하게 된 이유는 『크리미널 조선』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옛날이라고 해서 더 순진하거나 순수하다는 약간의 편견이 있던 나에게 조선의 살인사건이나 그에 대한 판결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대 보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에는 또 다른 인간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은 사람들의 ‘민낯’을 동반했다. 이러한 민낯은 남녀차별, 계급사회, 학대 등의 물리적인 폭력과 살인이 있었고, 그러한 폭력과 함께 계급과 사회의 권력자들에게는 언제든지 ‘비권력자’에 대한 ‘정신적 살인’을 자행할 ‘권리’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하찮고 익숙해서 제대로 역사에 남겨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잊혔다. 결국, 피해자들의 죽음은 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크리미널 조선』은 다양한 카테고리와 함께 살인사건과 범죄사건이 소개하고 이에 대한 판결과 당대 어떻게 문제에 반응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서문에서 조선 시대의 수사기관이나 왕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재판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설명되어 있다.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 살인사건, 미제사건, 성범죄 등 분류별로 나뉘어 있고, 그 안에는 각 장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어렵지 않게 소개하고 있기에 충분히 교양 도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가 많고 감정적으로 욱할 수 있으나, 작가 박영규님의 특유의 덤덤한 문체로 차분히(?) 읽을 수 있다.

 

단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진실’은 <1장. 살인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과 <4장. 성범죄 파일>이었다.

 

어느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마을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곤 했다. 고을 수령이 사건 현장에 오기도 전에 이미 마을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다. 문졸들이 들이닥쳐 마을의 노인들을 포승줄로 묶어 죄인 다루듯 닦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온 마을을 벌집 쑤시듯 휩쓸고 다니며 곡식이든 가축이든 옷이든 마구잡이로 노략질을 했기 때문이다. (…) 조선 시대엔 살인사건이 나면 일단 피의자나 피해자의 이웃부터 잡아들였다. (…) 당시엔 이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했다. 간련, 간증, 인보로 지목되면 포승줄에 묶인 채 관아로 끌려가기 십상이었고, 심지어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 이런 상황이고 보니 살인사건이 터지면 마을이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28~29쪽)

 

과연 진실은 참혹하다. 한 마을이 없어질 정도로의 수탈과 약탈. 그러나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은 ‘정의’를 위해서라니. 그 허위성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을 목격하고 경험한 조선의 ‘비권력자’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삶을 지켜냈다.

 

(…) 마을에 살인이 벌어져도 마을 사람들이 쉬쉬하며 은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이 관청에 알리려고 해도 주민들이 압력을 가해서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 피해자 가족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거둬서 피해를 보상해주는 일도 많았다. 피해 보상을 마을에서 해주는 것이 마을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31쪽)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은 살인사건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당대의 사실이자 진실이다. 피해자 유가족들과 그 유가족들의 친인척, 이웃들까지. 모든 것이 비권력자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들은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 살아남으려고 했다.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지면으로 남겨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몇 가지의 사건으로밖에 그들의 모든 참상을 알 수 있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그들의 소리는 ‘찍’하고 내뱉지도 못한 채 역사의 이슬로 마감되었다.

 

두 번째 충격과 공포를 주었던 장은 당연 <4장. 성범죄 파일>이다. 성범죄 파일에는 간음죄로 인한 치정살인, 강간살인, 불륜, 성폭행, 아동 성폭행 등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일부다처제의 시행과 계급사회에서 고위 관리 측이나 남성은 대체로 약한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을 핀 여성이나 강간을 당한 여성 등은 처벌을 받거나 심지어 참형에 처해졌다. 물론 바람을 핀 게 결코 용서될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바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 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을 같이 핀 남성은 약한 처벌을 당하고 여성은 죽는다는 게 분명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신통례는 강간을 저지르고도 교수형은 고사하고 유배형도 면한 셈이다. 그래서 결국 간통죄에 준하는 장형으로 처벌받았다. 그리고 강간당한 고음덕도 장형 90대를 선고받았다. (…) 사실 형조나 세종이나 모두 고음덕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고음덕은 처음엔 분명히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이후에 신통례와 관계를 가졌을까? 이는 그녀의 처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남자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고음덕의 남편이 알게 되면 고음덕은 어떻게 될까? 고음덕은 더이상 남편과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강간을 당한 것이라 해도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고 내쫓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음덕이 스스로 신통례를 찾아와 화간을 벌인 것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동시에 살길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법과들과 세종은 그녀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화간을 했다고 하여 간통죄로 처벌했으니,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56~157쪽)

 

책에서도 명시한 것과 같이 조선 시대에는 남녀차별이 극심했다. 특히 계급으로까지 그게 이어졌으니, 가장 미천하고 도움받지 못한 것은 관비 중에서 여성 관비였다. 이러한 현실에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당하고 살거나, 죽거나, 강간범과 함께 도망치는 것. 이 3가지 밖에 없다. 참으로 참혹한 현실이 아닌가. 권력은 어떤 형태든 폭력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결코, 피해자의 얼굴을 할 수 없다.

 

존장고발금지법이란 한 가정의 구성이 집안의 가장을, 마을 주민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종이 주인을 고발하는 것 또한 금지다. (208쪽)

이렇듯 존장고발금지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사회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알아도 관아에 고발하지 못했고, 종이 주인의 잘못 때문에 피해를 보아도 하소연하지 못했다. 또한 향촌의 일반 백성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 때문에 수령이 아무리 많은 부정을 저질러도 백성이 직접 수령을 고발할 수 없었다. 단 반역이나 모반에 해당하는 사안은 예외로 했다. (…) 조선의 최고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이 이런 악법을 명문화해 시행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종뿐 아니라 중국에서 성군으로 불리는 왕들도 모두 이 법을 시행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왕이라고 해도 결국 왕조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왕에겐 힘없는 백성의 인권보다 국가 체제의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317~319쪽)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지면으로 남은 사건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있는 남성이라는 성별 권력과 고위 관리들의 권위 권력 등이 수많은 비권력자들의 몸과 마음을 짓밟아 버렸다. 더구나 이러한 악법으로 인해 그 권력이 더욱 폭력과 악의 모습을 띠고 말았다. 조선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법과 제도다. 인간의 욕망은 수도 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큰 욕망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으려는 욕망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이름 안에 남성이라는 성별 아래 조선인들의 민낯은 깨끗하다. 이게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기 때문에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중학생 때 읽었던 기사 중 충격적이었던 기사가 있었다. 인도에서 있던 일인데 미성년자가 강간당했으나 그 집안에서 그 강간범과 소녀를 결혼시킨 것이다. 아이가 10살 채 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오늘 다시 이 기사를 찾고자 ‘인도, 강간, 결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바로 최근까지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 굳이 이 예시를 가져온 이유는 ‘아, 인도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1차원적인 생각이나 ‘남자가 무조건 잘못했네.’, ‘여성은 항상 피해자야.’라는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선의 민낯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는 울림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권력과 성별이라는 문제 아래서 수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저 민낯이 나에게 있지 않나? 나는 그들과 조금 다른 환경에 있으면서도 똑같은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아무것도 몰랐어요’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살인을 하면 법인을 잡아내는 것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검거율이 그때 비하면 훨씬 높다. 그러나 정신적인 살인은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농도와 깊이는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깊다고 생각된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익명의 악플, 젠더 갈등, 정치 싸움 등 다양한 문제에서 우리는 육체적 살인이 아닌 정신적 살인으로 이어지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거기에 어쩔 땐 일조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 민낯이 우리에게 진하게 드러난다. 그럴 때 나의 얼굴은 비권력자의 민낯인지, 권력자의 민낯인지 순간적으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조금씩 그 민낯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조금씩 일그러져서 결국 울길. 그래서 피해자의 얼굴을 하길. 그렇게 피해자의 얼굴을 모두가 했을 때, 겨우 조선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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