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호준이 되질 않았다.오히려 기독교로부터 해방되었고 구원받았다.저자가 말하는 ‘신학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는 김호준에게는 오히려 독이지 않나 싶다. 애초에 신앙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 저질 신학의 문제였다면 그릇된 전제에서 벗어나는 게 맞다. 버전 업데이트가 아니라 교회밖으로 나가야 김호준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자기 현실을 제대로 보고 ‘유치한 신학’ 속 신앙의 부질 없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무대를 바꾸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김호준은 김호준이 돼야 한다. 저자가 목사가 된 것처럼.이것이 저자와 나의 위치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다.목사가 된 저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목사로서의 최선일 테지만 오히려 용기 있게(?) 교회를 떠나라, 신앙을 떠나라고 말해줄 순 없을까란 생각이 든다. 또한 교회의 권징 문제 역시 목사가 잘못하거나 교회가 잘못하면 어디로 내쫓을 건가? 해체하는 게 맞지 않을까? 교회론의 본질로 문제를 타파해갈 생각이라면 무교회주의라는 해묵은 생생한 표본도 있다. 대상이 불분명했다.젊은 목사가 교회에게 쓰는 건지,아니면 성도에게 쓰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이건 정리되지 않은 설교 같다는 게 내 결론이다. 출판사에서 단어나 문장과 같은 것을 좀 더 매끄럽고 세련되게 교정해주지 않았다. 일례로 ‘응당’ 이나 ‘시나브로’ 등의 단어 사용이 지나침에도 지적이 없었나 싶었다. 초반부터 글이 아주 지루한 것도 한몫했다. 책 표지(디자인) 역시 내용과 달리 유치하고 디자인이 좀 후졌다. 오히려 챕터마다 나가는 글이 참 좋았다. 그게 이 책에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 전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저자의 텍스트는 너무 난삽하고 인용이 많은 것으로 보아 채 소화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깊은 사유나 사색 없이 ‘나 책 많이 본다’고 뽐내는 것 같았다. 세 명의 주인공(?)에게 집중하고 문제의식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자기가 당한 경험을 욥기와 갈라디아서나 고린도, 마태 등으로 맥락 없이 투영해 무리하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에서 소화되지 않은 ‘지식자랑’으로 비춰졌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동어반복이다.어릴 때부터 이곳저곳에서 듣던…(익히 알고 있는)성도들은 본래 똑똑하다. 신학이라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서 목사들의 직업에 국한된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신학을 공부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 홍목사는 보수적인 입장인 것 같다. 해서 읽고나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다시 읽어볼 흥미조차 잃게 만든 아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