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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 난 것이 스릴러 영화 아이덴티티였다. 피에 물든 손바닥에 이어져 있는 다섯 손가락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상징한다. 내용은 비오는 날 밤 변두리 호텔에 모여든 낯선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면서 진짜 범인을 찾기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 처음에는 단순히 미친 살인마가 저지르는 참극 같지만 영화가 전개 되며 마지막에는 예상치도 못한 반전이 등장한다. 마지막엔 진짜 살인마가 밝혀지지만 이는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엔 다중인격증세를 보이는 주인공이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그의 불행한 어린시절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끔직한 사건의 범을 바라볼 때 잔인한 살해기법이나 그의 전과 이력 등에도 관심을 두지만 왜 그런 악마같은 인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그들의 배경에도 관심이 크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할 때 지독하게 궁핍했던 어린시절 때문에 교육의 부재가 있었다거나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던가 혹은 타고난 사이코패스기질이 있는 인물이란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 무언가 특정 범주에 드는 사람이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한 사람들만이 살인을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표지에 등장하는 그의 인터뷰 내용은 이와 전혀 다르다.
'인간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우리는 최고의 창조물이 아니다.
나는 모든 인간이 살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파괴적 본능은 우리 모두의 안에서
잠자고 있다. 나 역시 살인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
실제 표지에 등장하는 손가락에 이어져 나온 인물묘사는 남녀와 회사원 중절모를 쓴 신사를 가리지 않는다.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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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섹스와 자기애 2. 가정폭력 3. 잔인함의 끝 4. 여자는 왜 살인을 하는가 5. 살인 욕구 6. 변태의 재구성 7. 돈의 맛 8. 은폐하려는 자 9. 시체를 토막 내는 이유 10. 공공의 적 |
저자는 1947년 생으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전담 수사관이자 심문전문가다. 지난 2009년에 42년의 경찰 생활을 뒤로하고 은퇴했는데 그 사이 수백 건의 범죄 심문을 진행하였으며 수많은 살인범들을 체포했다. 현역시절 처리한 살인사건이 약 100여건을 넘고 해결률 99%를 자랑한다. 그렇게 베테랑 형사였던 그가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들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높은 긴장감을 부여했던 사건만을 추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사건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인지가 되어가는지 그 동기와 과정을 해부한다.
등장 인물들은 남성 이외에 여성도 등장하며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이들의 차이점과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지난 번에 서평한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은 사건전담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범죄였다면 해당 서적은 수사관의 시각을 바라본 서적이란 점이 차이다. 저자는 실제 발생했던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인물의 직업이나 관련된 장소, 시간과 날짜 등을 임의로 바꿔놨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전직 수사관이기에 사건이 여과 되어 언론에 나가기 이전의 날 것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인사건에 관해서 심리, 법률적 측면에서 심도 있는 접근을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사관으로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 유영규
http://blog.naver.com/lawnrule/120193885664
이 책은 그가 겪은 사건들 가운데 가장 긴장되고 충격적이었던 사건들을 통해 평범해 보이던 한 사람이 어떻게 살인자가 되는지를 살인 동기를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살인을 하게 되는 악의 근원은 무엇인지, 여성의 살인과 남성의 살인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살인자의 자백을 끌어낼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언론은 모르고, 수사관는 말해주지 않는 인간 본성에 관한 세밀한 이야기를 그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실화임에도 작가의 역량 덕분인지 매 챕터가 감각적인 소설 같았다.
특히 변태의 재구성 파트는 기괴하기 이를데 없었다. 여기에 문구들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지나쳐 자세히 적진 못할 정도다. 대충 남성이 동물을 이용한 성행위를 해서 크게 부상을 입었는데 부인이 이를 돌아와서 목격하자 자살하는 사건과 같은 것이 그렇다. 그가 말하길 이런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체에서 배출에 이용되는 곳을 이용하여 쾌감을 느끼려 스스로 학습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행위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행위들이 속속 보고되지만 결과만 잘못되지 않으면 관련된 사람들이 아닌 이상 우리들을 전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신문에서 봤던, 좁은 공간에 수음행위를 하다 119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도 아마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책에서 잔인하거나 너무 외설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부분은 작가가 다시 필터링 해주지만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어린 친구들이 읽기에는 상당히 자극적이기 때문에 성인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내용이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란 뜻은 아니다. 읽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가 수사관 시절에 사건을 처리하며 느꼈을 인간에 대해 수많은 번민이 챙장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말미에는 어디까지 정상이고 나는 범죄자는 다른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까지. 수사관은 사건의 처리를 위해 가해자의 입장에 서기도 해야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으니 당시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부담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읽으면 읽을 수록 뭔가 형언할 수 없이 복잡하고 속에서부터 정리하기 거의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평소에 호러무비도 큰 동요 없이 곧잘 보는데 이 책은 마음의 준비 없이 봐서 그런 것인지 글로 접해서 그런 것인지 맘에 불편했다. 일상에서 분명 흔하지도 않고 한참을 벗어난 이야기임에도 실화란 점과 나와 같은 종류의 개체군에서 벌어지는 기기묘묘하고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심연묘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책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튼 여름을 맞이해서 나온 납량특집 공포물도 아닌데 일단 일독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문득 읽는 와중에 예전에 봤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세븐'이 생각났다. 죽음을 부른 동기들이 그닥 특별한 것이 아닐때마 저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탐욕와 그로인한 잔인한 결과들을 지켜보며 인간성의 본모습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 책이다. 범죄 수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이고 비위가 너무 약한 사람만 아니라면 인간의 그늘진 면에 대한 솔직한 보고서라 생각하기에 읽기를 권한다. 범죄에 관해 학구적이고 분석적인 책만 접했던 사람이라면 다른 차원에서 범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저작권을 위해 일부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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