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 늘 청춘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의 무드를 조금은 깨는 이야기지만 사실 이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조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일단 나는 삼심대 여자이고 저자는 39년생의 74세인 노년의 남성으로 이 책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서 엄청나게 나이차이가 난다는 점. 그리고 책의 푸른색은 그리스의 지중해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 같은데, 책 속에서 배경이 되는 장소는 정확히는 그리스의 이드라 섬이다. 그리스는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어 유로존 탈퇴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국가다. 그런데 지은이가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에 관한 담론을 책에서 펼치니 다보스포럼에 관한 경제서적을 서평하다 이 책으로 넘어온 것이 화근이 되어 시원치 못한 기분으로 책 읽기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윤리시간에 충실하게 학습했다면 에피쿠로스 학파가 절제 없는 향락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알겠지만, 단어가 주는 분위기는 내겐 그런 것이었다.

 

> 더 보기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이며 유물론자. 아테네에 학교를 세우고, 이것을 '정원학교'라 불렀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조. 헬레니즘 시대란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지배 하에 있었던 시대로, 그로 인하여 그리스 본래의 문화에 외국의 문화가 혼합되었으며, 이 상태는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그리스의 고전적인 철학도 그 모습이 퇴색되어, 주로 개인적인 인생 문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에피쿠로스도 또한 이 인생 문제를 사색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여 공허 가운데에서 운동하는 원자로부터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지만, 원자는 '직선운동에서 빗나간' 자의성을 갖는다고 보고, 데모크리토스의 기계적 결정론에 새로운 견해를 가했다. 인식에 대해서는 감각론을 주장하고 감각은 그 스스로 참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은 감각을 해석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식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지나 미신에 기초한 신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은 평정하고 자율적인 심신의 안정 상태, 즉 '아타락시아'라 하고, 이것을 쾌락이라 칭하였다. 그가 주창한 쾌락주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출처

 

 

 지은이 대니얼 클라인은 하버드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강의와 방송계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 미국에서 사랑 받는 교양철학 저술가이며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책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 그리스 이드라 섬으로 떠난 것은 아니고 그가 치아 임플란트를 위해 상담을 받은 이후에 심경의 변화를 겪고 나이듦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짐을 챙겨 떠난 것이다. 그곳에서 그가 사색한 것들을 엣세이집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이들면 누구나 치아가 부실해지고 잇몸뼈가 부족해지는 것이 다반사인데 그것을 부정하고 공을 들이려하는 모습이 부질없이 느껴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동일한 일에도 육신은 지치고 고단해진다. 일전에 장애를 가지거나 노약자나 임산부와 같은 약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고양하기 위해서 물리적으로 체험하는 문화행사에 관하여 본 적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전신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눈은 잘 보이지 않도록 뿌연 안경을 착용시키거나 무겁고 거대한 복대를 착용하여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일상생활과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사이에 무척 힘들고 고단하다며 피로를 호소했다. 정신적으로는 성숙했고 더욱 많은 포부를 가질 수 있지만 그러한 지혜와 혜안을 나이든 육신이 가둔다. 마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진 자연에 맞닿은 형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한 문제가 있다. 

 

 요즘은 단순 고령화 사회가 아니라 초고령화 사회다. 예전 같으면 손주 손녀를 보고 느긋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단순한 건강관리 활동 이상으로 헬스장에서 몸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테스토스테론 패치를 붙이며 원활한 성교를 위해 72시간 간다는 비아그라를 복용한다. 영원한 젊음을 그저 꿈꾸는데서 나아가 진실로 노화를 지연시키고 청춘을 연장하고자 숨가쁘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나이드는 것이 즐거운 상황도 아닌데 이를 거스르기 위해서 노력까지 하느라 노년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페이지에 옮겨온다. 에피쿠로스는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며 운이 좋은 건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라고 했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았던 파트는 볼드체와 붉은 색상으로 꾸몄다. 철학서적이지만 철학에 관해서 굳이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다. 소주제에 글의 분량도 많지 않아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고 여백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편한 느낌의 책이다. 특히 중간에 종종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이드라 섬을 닮아 선명한 색채를 띄며 그림체는 면 위주로 간결해서 편안한 기분을  준다.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면 관련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드라섬은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에 오른 장소이기도 하다.

 

이드라섬

이드라섬2 

 

프롤로그. 에피쿠로스와 함께 여행을 


1장. 즐겁게 살지 못하면 바르게도 살 수 없다

욕망을 해소시키는 정원으로의 초대 | 버킷리스트를 버리다 | 일상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법 | 에피쿠로스가 살아 있다면 |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 자신에게 충실할 것 | 남들과 어울리는 기쁨 |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할 것인가 | 몽테뉴가 주는 교훈 |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2장. 세월은 똑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인생을 살펴보기에 가장 완벽한 시간 | 지루함에 관하여 |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자유 | 내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 | 모두가 진실일 필요는 없다 | 인생은 언제나 놀이 |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3장. 고독한 만큼 나에게 가까워진다

기억은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 홀로 생각하고 대화하는 기쁨 | 자서전을 쓰고 싶은 충동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혼란 그 자체가 바로 나이다

4장. 아름다움은 선택이다

변치 않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 성적 욕망이 주는 짐 |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 영원을 꿈꾸면 절정을 잃는다 | 두 번은 살 수 없는 시간 | 정열이 가라앉은 편안함 | 결혼은 오래 지속될수록 빛난다

5장. 살아 있음이 곧 기적이다

일상사와 정치에서 벗어난 삶 |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권리 | 지나침과 부족함 사이에서 | 반성하지 않는 삶 | 도전하지 않으면 자기를 잃는다 | 답이 없는 질문들 |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 |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6장. 능력 밖의 것들을 내려놓다

망각의 늪에 빠지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어둠 속에 갇히는 두려움 |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 | 쓸모없는 인간이 되기 전에 | 자살할 수 있는 권리 | 진단을 기다리는 시기 |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 낭만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7장. 한순간에 영원을 붙든다

우리가 신을 만들어내는 이유 | 영원성밖에 남은 것이 없다 | 머리가 유연해지는 시간 | 깨달음에만 집중하기 | 마음 챙김에 관하여 | 평범함 속에서 우주를 본다 

에필로그. 인생의 단계마다 각기 다른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 
역자의 말. 항구에 정박한 느긋한 배처럼

 

 한편으론 나이가 든다는 것이 과거의 아이상태의 성향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피츠제럴드가 지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주인공이 조로증 걸린 아이 같은 모습에서 나중에는 점점 어려지다 아기의 상태로 변한다. 시제 노인도 중년의 시기를 넌넘기면서 어린 아이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간대가 다시 찾아오게 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처럼 무언가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특성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근자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완독한 이후, 내게 남겨진 노년의 이미지는 완숙함과 깨달음이었는데 책에서는 그저 여전히 발견의 여지가 많은 미완성의 인간이었다. 종교와 질병, 정치와 자살, 철학과 섹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생각을 담고 있기에 굳이 노년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삶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이다.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http://blog.naver.com/lawnrule/120165397638

 

 

책에 나온 인상에 남는 구절로 마무리 하려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라는 벌을 받았다.

일단 세상에 내던져지면 

인간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 장 폴 사르트르

 

 

* 저작권을 위해 일부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