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에는 중국인 저자의 책을 전보다 자주 만나는 것 같다. 경제나 사상이나 위인 관련한 책에서는 중국인 저자가 적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접했을 때는 이런 미술서적은 대개 서양 혹은 국내 저자인 경우가 많았다. 중국과의 교류가 종전 보다 늘어서 그런 것인지 양질의 타분야 도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일단 기쁘다. 또한 이 책은 뒤에 설명하겠지만 유독 만족도가 높다. 배경 문양이 조금 고풍스러운 것이 중화권 느낌이 있지만 딱히 중국인 저자라서 여타 출판물과 특별하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저자인 천빈이란 사람은 미술사학 석사학위자로 그의 머리글이 인상적이다. 천빈은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도록을 탐독하는 열정가득한 청년이었다. 결국 파리행 티켓을 사서 힘들게 루브르 박문관에 도착하여 자신이 받은 감동을 술회한다. 방탄유리에 가리워진 모나리자에 대한 실망감과 이어서 마주친 뒤러의 작품 [스물두 살의 자화상]에서 그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바로 그동안 자신이 작가가 아닌 작품에만 골몰하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은 자화상이란 나르시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화가의 자기성찰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고 작가는 자화상의 매력에 빠진다. 사실 화가는 과거에는 기술자 즉 화공으로서 마치 붓의 연장선인것 마냥 도구적인 존재로서 대접받고 있었다. 그림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는 있지만 직업적 측면으로만 봤을 때는 주문제작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상업성과 무관한 자화상은 연습을 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화가 자신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흔한일이 아니다. 


하지만 초상화는 자체의 특성이 화가 자신을 전면에 내세워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있어 그 정점이라 할 수 있기에 어떤 작품보다 작가 본연의 세계에 밀접한 형태이다. 글로 써지지 않은 작가의 내면에 대한 지문과도 같다 할 수 있는 자화상에서, 암호 같은 그들의 속마음을 눈으로 해석하는 것에 작가가 흠뻑 빠져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다른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그들의 외양과 분위기를 담겠지만 자신이 모델이라면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 표출하려는 욕구가 고스란히 있을 것 이기에 그리노라면 그 고뇌가 훨씬 깊고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천빈의 말처럼 마치 편집과 구성이 책속의 전람회 같다. 미술학도라서 그런 것인지 책의 표지를 비롯해 간지와 화가의 얼굴을 배치해 놓은 목차마저도 미려하다. 435페이지 분량이라 비교적 가벼운 느낌의 코팅지를 사용했음에도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든다. 부록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것이 거장들의 자화상 컬렉션에서는 80여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페이지에 한명씩 화가들의 자화상을 실어두었으며 바로 뒤에는 색인을 두어 도판별로 인명별로 찾아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명의 화가를 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찌보면 지은이에게는 덜 힘든 과정이었을텐데 이렇게나 많은 인물들을 다룬 점에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엄선한 것으로 보이는 화가들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저 화가 개인의 자화상을 해석해주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애와 자화상 이외의 중요한 작품의 해설과 시대상 등에 지면을 할애해서 화가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일인당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너무 가볍거나 지루하게 내용이 흘러가지 않도록 해준다.


하단 박스는 책의 목차다.


◾머리글 _자화상전을 열며


◾‘나는 예술가다!’ 자화상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다. _알브레히트 뒤러 
◾절대고독의 경지가 배인 천재 예술가의 주름 _레오나르도 다빈치
◾완벽한 미인을 그린 외로운 화가의 초상 _라파엘로 산티
◾인생무상을 그린 북유럽 초상화의 대가 _한스 홀바인 2세
◾칠흑 같은 어둠으로도 가릴 수 없는 화가의 속내 _틴토레토
........중략

◾거장들의 자화상 컬렉션 
앙리 마티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피트 몬드리안 / 파울 클레 / 클로드 모네 / 프리다 칼로 / 막스 베크만 /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중략

◾도판 찾아보기
◾인명 찾아보기


일단 모든 작가별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작가를 표현하는 한 문장을 두고 하단에 작가의 이름 그리고 바로 아래는 작은 액자 안에 화가의 자화상의 얼굴 일부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구도가 마치 열쇠구멍으로 화가들이 넌지시 독자를 들여다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작가의 대표적인 자화상을 전면에 걸어두고 바로 다음 페이지 상단에 작가 이름과 생존기간이 적혀있다.


인상에 남는 자화상은 역시 지은이처럼 나도 뒤러다. 학부 때 책을 읽다가 윤기 넘치는 그의 곱슬머리와 당당한 눈빛을 보면서 매혹되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에 지은이가 왜 이 작품에 사로잡혔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특히나 그는 미술이론에 대한 저술활동을 하였고 스스로를 홍보하며 작품의 해외 유통까지 도모하기 위해 대리상을 고용하고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자였다. 한편 종전 화가들과 달리 스스로 서명을 만들어 작품에 서명을 남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디에고 벨라스케스 또한 인상적이다. 아마 벨라스케스는 몰라도 [시녀들]이란 작품은 눈에 익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화가들은 자신을 작품 속에 재해석해서 등장 인물로 배치하거나  귀퉁이에 눈에 띄지 않게 두거나 혹은 상징적인 표시만 해두기도 하는데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굉장히 비중있게 이 그림에 다룬다. 좀 노골적이어서 지은이는 이를 숨겨진 자화상이라 칭한다. 대외적으로 기사작위까지 수여 받은 궁정화가로 영예로운 삶이 후대에 화가로서의 명성과는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이 아니러니라 하겠다.


이들 모두 캔버스 밖에서 인정 받으려 했지만 종국에는 다시 작품속에 남아서 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내고자 했던 열망이 있었다는 점이 큰 공통점이다. 


부록에 실린 마티스와 칼로 그리고 에곤 실레, 모네도 유명하기에 본문에 실리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지만 원채 다른 서적들에서 많이 다뤄졌고 부가적으로 인물선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작가가 주관적으로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중요도 순의 리스트가 있어서 그대로 한것 같다. 분량도 문제지만 너무 대중성 다분한 화가들로만 다뤘다면 뻔한 책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책이 맘에 들어서 부록에 실린 유명인물들을 다시 추려서 자화상전2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만족스러운 책이다. 물론 미술서적을 적지 않게 읽어서 내겐 모두 아는 인물들이고 익숙한 내용이지만 교양서적으로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은 적당한 분량에 부록까지 포함해 구성이 알차다는 점이 매력있다. 가끔 그림책인지 소설책인지 이론책인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아쉬운 미술서적들이 있었는데 적당한 분량의 글과 사진자료에 자화상이란 매개체로 미술의 이해를 도우려는 작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관철되어 제목 그대로 자화상전시회를 본 듯한 착각이 드는 괜찮은 책이다.


미술에 접근하는데는 시대상이나 미술사조를 통해서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자신의 느낌만을 가지고 배경지식 없이 접근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작품의 기본 출발은 작가의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가 자화상에 빠져든 이유를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은 청소년부터 시작해 나이 불문하고 심지어 미술자체가 따분하다고 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 저작권을 위해 일부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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