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이기주 지음 / 청조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택배 봉투에서 책을 꺼내 든 순간 하늘을 닮은 표지에서 민트향이 날 것만 같았다. 만져보니 거슬거슬한 헝겊의 촉감. 작은 판형에 147페이지로 여타 책들이 300페이지를 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얇고 가벼운 책이었다. 23가지의 이야기가 나오며 매 사건마다  소박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근자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소탈하면서도 동시대적인 느낌이 들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듯한 내용이 많았다. 동시대적인 느낌이란 것은 지은이가 기자생활을 했기 때문에 뭐랄까... 오늘 신문 귀퉁이 어디선가 눈으로 훑은 것 같은 이야기가 종종 보여서 그렇게 여긴 것 같다. 한동안 자기계발서와 고전문학을 읽어서 머리가 많이 아팠는데 이 책은 가슴이 좀 따끔하다.


스무가지도 넘는 에피소드 모두 하나같이 훈훈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단연 첫번째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다 읽기도 전에 왜 이책의 타이틀일 수 밖에 없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은행지점장 일을 하셨던 분이 퇴직금을 자식의 사업 자금으로 잃으신 이후 경비일을 보시게 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치매를 겪고 있는데 이 분의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이 병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기억하지 못할텐지만 대신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할지 설레임이 오히려 생긴다고 하신 것. 그래서 삶을 비관하지 않고 당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자기 인생의 가장 젊은 날로 여기기로 하신다. 


사실 우리는 매일의 인생에 있어 매순간, 매사건 마다 초보이다. 예를 들어 내 어머니는 내가 30에 닿으면 처음으로 30살짜리 딸을 둔 초보엄마다. 우리는 익숙한 듯이 매일을 살아내지만 사실 한번도 산적이 없는 오늘을 사는 것이다 . 치매가 아니어도 치매인냥 그 사실을 잊는 것이 문제이지만.


노인 분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아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그리고 처음 만나 날 등을 수첩에 적어두셨단다. 누구나 삶에 위기가 오면 흩어진 에너지를 모아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이를 쏟지 않던가. 삶의 가장자리에 서면 인생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 글의 주인공도 그러했던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작년에 썼던 나의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너무 사소해서 조잡스러운 글들도 보였고 친구를 만났던 날, 시험이 있었던 날, 스쳐갔던 감정들까지. 낣은 종이 냄새를 품은 손때 묻은 나의 추억을 더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덜 슬픈 것이 나는 아직은 기억할 수 있으니까. 하나라도 더 떠올릴 수 있을 때 좋은 기억을 많이 품고 싶다. 


왜 나는 이토록 젊은데 책을 읽으면서 한껏 삶을 산 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인가. 지금 보다 어렸을 때는 사소한 것에 연연하고 가슴 졸였는데 얼마간 나이를 먹었다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면 중요한 것이 눈에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원래 인생은 아이러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전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울고 싶으면 한번 읽어라.

눈물이 쏙 들어가진 않더라도

덜 울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