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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을 걱정해주는 외숙모 헬렌을 따라서 그들의 휴양지에 함께 머물게 된 그녀가 전도 유망한 세이트 존 허스트와 소설가를 꿈꾸는 27살 테렌스 휴잇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며 허스트와는 친구로 남게 된다. 물론 중간에 이블린 머거트로이드라는 청혼을 자주 받는 매력적인 여성이 테렌스에게 맘을 주지만 사랑의 큐피트는 조금 식상한 감이 있어도 레이첼에게 돌아갔다.
작가는 들으면 어떤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책에서 갈구했던 것은 로맨스였다. 나는 뻔히 그녀가 그런 전개를 펼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간간이 삼각관계가 나올 때마다 너무 맥 없이 끝나버려서 오기로 뭔가 그럴싸한 것이 나올 때까지 읽었더니 결국에는 주인공 아가씨 레이첼이 죽어버렸다. 레이첼과 휴잇은 엘리스 플러싱이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여성의 제안으로 원주민이 사는 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약혼을 기념하기로 하였지만 결국은 여기서 열병을 얻고 만다.
이제 막 사랑의 작은 결실인 결혼의 전초전인 약혼을 한 커플에 비극을 안겨준 부차적인 원인은 실력도 없으면서 그저 좋아질 것이라며 약혼자와 헬렌을 안심시킨 로드리게즈 박사였다. 나중에 르사즈 박사가 불려 오지만 때는 늦는다. 표면적으로는 안타까운 상황을 설정하려한 것 같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좀 더 상징적인 의미로서 이런 연출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출항2에는 번역자의 작품해설서가 덧붙여져 있지만 나는 일부러 아직도 이를 읽지 않았다. 서평 이후에 좀 더 작품을 음미하고 봐야만 될 것 같다.
페미니즘계에서 일종의 선두주자와도 같은 이미지의 그녀이고 작품에서도 현대여성에게서 그녀가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었을텐데 울프는 주인공격인 그녀를 오지에서의 풍토병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너무 허망했다. 죽음을 직접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것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레이첼을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결론이 그녀에게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남녀 할 것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그녀의 자아의 파편 같다고 느꼈다. 허스트가 변호사와 캐임브릿지 교수라는 직업을 두고 갈등하는 인물인데 반해 테렌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지닌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친화적이라 생각하는 내게 레이첼이 열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울프가 레이첼을 열병이 걸려 죽어버리게, 그러니까 낯선 남자의 키스에 몸서리칠 정도로 순수함을 간직한 그녀를 죽여버리고 작가를 꿈꾸는 청년의 소설 소재로서의 그녀가 되도록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하면 남겨진 테렌스는 울프의 분신 정도랄까. 그저 나의 생각이지만.
울프의 병명은 정신분열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서 보이는 많은 여성들은 일견 그녀가 만나온 여성 중에서 골라진 캐릭터일 수 있겟지만 동시에 그녀의 여러개로 쪼개어진 여성으로서의 자아가 쉼 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 같다은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을 쓰려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전지적 시점으로 쓰는 것인데 어찌 보면 그냥 그 사람인 것 같은 것 말이다. 읽는 것도 버거웠는데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고되고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심약하고 여렸다는 그녀가 10년간 12번을 고쳐썼다는 문구가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머릿속에 깊이 남는다.
울프의 다른 작품도 무척 궁금하다. 눈물 훌리면서 매운 음식 찾는 것 처럼 그녀의 작품 하나를 간신히 읽었지만 오히려 다른 작품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도록 하는 일종의 큰 자극제가 되었다. 특히나 페미니즘과 관련이 큰 [자기만의 방]과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강조된 [댈러웨이 부인]은 꼭 읽어 보고 싶다.
울프의 연보와 작품해설 및 등장인물 소개까지 부록으로 꼼꼼히 나와있고 전문가들의 감수를 따로 거쳤다고 하니 책 자체도 작가를 떠나서 추천할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