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p.42)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
‘이 책앤‘ 자람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마음을 담아 읽을 것이다. 그러니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책이다. 자람이 말이 완전히 맞다. (p.72)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칠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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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화된 혐오란 그날의 기분, 이유 없는 짜증, 그저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흥분과 화로 인해, 혐오의 이유가 즉각 제조되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시사한다. 일단 여러 군데 혐오를 저질러놓고선, 일관된 맥락이 있다며 그것을 취향처럼 인식하기. 그러곤 자신이 떳떳이 내세울 설득력으로 포장하기.
어쩌면 취향화된 혐오에서 일관된 취향이란 없다.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아집만 있을 뿐. (p.132)

누군가는 여전히 당신의 간절함을 손에 쥐고선 허황된 조언과 평가를 일삼는다. 하지만 당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절실함의 순도와 등급을 제멋대로 매기는 자들 앞에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자기 삶을 지켜내려고 묵묵히 버텨온 이들의 절실함과 그 품위를 비웃지 않는 품격. 당신은 놓지 않을 것이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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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이나 나나 근면 성실했지만 그건 자랑도 자부도 되지 못했다.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시간을 쪼개고 욕망을 유보하며 살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는데도 서른살의 겨울을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라했다.(p.19, <에트르>)

10년이란 세월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긴 시간이지만 뒤돌아보면 몇개의 장면만 기억나는 꿈과 같았다. (p.119, <뒷모습의 발견>)

죽음이 자신과는 거리가 멀고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동갑인 고객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고 어둠속에서 불을 켰을 때 죽음이 바로 거기, 좁고 네모난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술에 취한 미치광이들이 모는 차가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었으며, 주머니 안에 칼을 숨긴 싸이코패스들이 활보하는 거리에서 웃으며 걸어다닌 셈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아슬아슬하게 죽음에서 비껴났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이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보다 죽음이 그림자처럼 발끝에 따라붙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바닥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이 들 것처럼 피곤한데도 지난밤처럼 달게 잘 수 없었다.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던 삶은 완벽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p.140, <이후의 삶>)

책을 보려면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식탁에 나와 미등을 켜야 했다. 똑똑해지고 싶어서도 반항의 의미도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만 잘못 살아왔고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 속의 인물만이 현실의 나를 소리 없이 다독거렸다. 여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이게 나의 실패고 진짜 얼굴이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였다. (p.168, <변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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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뭔가를 착각한 게 틀림없으며, 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음수(-) 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예요. 그건 수학이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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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개 도저히 힘을 낼 수도, 낼 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 나를 힘 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 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 힘내. 힘들겠지만 어쨋든 알아서, 힘내. 세상에 "힘내" 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 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 그냥 그 말 그대로, 힘내. (p.60)

P는 꽤 근성이 있는 욕 선생이었다. 청하 두 병을 비울 때까지 우리들의 진지한 욕 레슨은 이어졌고, 슬슬 둘 다 혀가 풀리기 시작할 무렵, P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그 정도면 됐어. 사실 욕이란 게 연습한다고 늘겠냐, 술 마신다고 늘겠냐. 그냥 사는 게 씨발스러우면 돼. 그러면 저절로 잘돼." (p.117)

이쯤에서 다시 강요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진탕 마시고 속엣말 다 편하게 털어놓자" "취한 김에 비밀 하나씩만 이야기해봐" 같은, 조직된 ‘허심탄회 주의‘를 강요하는 술자리도 질색이다. 나는 아직 준비도 안 됐고, 딱히 당신과 그럴 생각이 없으며, 그럴 만한 관계도 아닌데 따옴표를 확 열고 들어오면 "제가 털어놓을 속엣말은요•••, 당장 집에 가고 싶어요" 말고는 할 말이 없어진다. 백지 위에서 쓱쓱쓱쓱 같이 뒹굴며 같이 뭉툭해지며 같이 허술해져가며 마음이 열리고 말이 열리는 건 일부러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이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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