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의 경주에서 이번에도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이미 저만치 앞에 가 있고, 뒤에 처져 있는 나를 돌아보며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두르라고, 이미 늦었다고, 그동안 뭘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한 번도 게을렀던 적이 없었는데, 번번이 시간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청춘이 한참 남은 줄 알았을 때 갑자기 그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하고,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 편이라고 내심 생각했을 때 거울 속의 네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한다. 이 경주는 공정하지 않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쪽이 지게 되어 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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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상실은 그저 상실일 뿐이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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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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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암술 끝에 아끼는 금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는데 연필심이 뚝 부러졌다. 심이 너무 많이 드러나도록 연필을 깎아 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힘을 세게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부주의하지 않았고 경솔하지 않았는데 망가지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p.45)

소란은 무사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무사. 없을 무. 일 사. 일 없음. 아무 일이 없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새롭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고, 기대가 무너지는 날이 더 많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시 다음 날을 기대하면 되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나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소란은 그때 자신이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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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통이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다 소용없는 건 아닐 거라고•••. 고통을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거기 있고, 다만 거기 있음을 같이 안다고 말해주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고 위로를 전하는지도 몰랐다. (p.533)

좋은 일들만 있기를 기원해. 살면서 교훈 같은 거 안 얻어도 되니까. 좀 슬프잖아. 교훈이 슬픈 게 아니라 그걸 얻게 되는 과정이. 슬픔만한 한 거름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기왕 슬펐으니 거름 삼자고 위안하는 거고••• 처음부터 그냥 슬프지 않은 게 좋아.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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